허주머니 / 안해원
내 호주머니는
왜란을 겪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치열한 격전지
다섯 개의 노를 연신 저어대도 맞설 수 없는 싸움
장부의 손에 든 마지막 칼이 덜컥 떨어질 때
조총의 흔적만 고요히 남는다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의 위인지학도 깃듦이 없고
신사임당의 예술혼도 세종의 치세도 누리지 못한 채
누수涙水에 침몰하려는 배 언저리 저편에서
두 손을 흔들어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본다
구멍만 휑하니 남은 허주머니에서
내 손가락보다 더 아프게 허공을 휘젖고 있었을
저 아내의 끝없는 부름 앞에서
나는 왜
패주하는 군졸의 모습이어야 하는가!
《작가노트》
가난이란 불행이 아니다. 사랑의 진실함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도구다. 그러한 진실함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인생이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