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서 조몬문화가 고립된 문화였다는게 오류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조몬문화가 뭘까요?
일본의 석기시대 문화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생활상과 사회조직을 갖춘 시대였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석기시대라곤 하지만 당시 조몬시대의 예술품이나 경제등 여러면에서 볼 때, 우리가 배경지식 없이 막연히 떠올리는 석기시대의 이미지에 비해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기틀은 다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은 이때 일찍이 일본열도 안에서와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했었던 것 같은데 오늘날로 치면 공장에 해당하는 유물까지 발견되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 일본의 주요한 생산물은 비취와 흑요석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대량의 비취를 바다를 통해 훗카이도로 옮겼으며 작물의 재배도 시작되었으니 나름 인간이 살기에 필요한 것은 갖추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으 무셔. 그 시대에 바다를 어떻게 건넜을까요. ㄷㄷ
하긴 저 같아도 무인도에 떨어지면 농업부터 일구고 돌과 진흙으로 도구를 만들었을 것 같아요.
천천히 그러면서 사회도 진화하는 거겠죠?
게다가 이들은 표주박등 일본에서 나지 않는 식물도 외국에서 씨를 받아와 재배했었다고 해요.
즉, 벼농사 일색인 문화는 아니었고 나름 다양한 기술과 생업이 존재했었던 문화였습니다.
이 조몬문화는 대략 1만년동안 지속되게 됩니다.
[야요이 문화]
조몬시대 이후에는 야요이 문화가 일본 사회에 자리잡았습니다.
여러분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흔히들 야요이 시대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잘못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은데 벼농사는 조몬시대 만기부터 이미 시작해왔었습니다. 그것도 체계적인 기술이 한 덩어리가 되어 퍼진것으로 보이는데 이 말의 뜻은 벼농사의 기술을 가진 집단이 이주해 일본에 들어왔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로부터 들어왔을까요?
여러분 모두들 당연하게 아시겠지만 바로 중국과 한반도였습니다. 그런대 이 때 당시 벼농사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기술이 들어왔습니다.
각종 밭농사 작물과, 청동기, 철기, 양잠, 작물기술, 토기를 이용한 소금을 생산하는 기술등 매우 다양하고 유용한 기술들이 유입해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는 물고기 잡이 기술도 있었는데 가마우지라는 새가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목 아랫부분을 묶어놓아 고기를 잡는 독특한 물고기잡이 기술입니다. ㅎㅎㅎ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국과 한반도에서 들여온 기술들로 인해 조몬문화에 변화가 일게 되고 야요이 시대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한국인 여러분 뿌듯하시죠??
....고려시대까지만 뿌듯해하세요.
아무튼 이렇든 일본열도 내외에서 교역이 활발했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결코 자급자족하는 고립된 사회일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일본열도는 교역을 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 야요이시대에 쓰여졌던 중국 삼국지의 [위지 왜인전]을 보면
'나라마다 시장이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교역한다.'
'논밭이 없어 오로지 남북으로 교역을 함으로써 생활했다.'
''약간의 논은 있지만 생활하기에 부족해서 교역을 했다.'
라는 문장이 쓰여져 있는데 일본은 교역없이는 살기 어려웠던 사회였고 따라서 고립된 자급자족하는 사회라는 것은 말도 안되며 일찍이 상업과 교역으로 다저져온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상업을 발달시켜왔으며 실리적 사고방식을 갖춘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여튼, 바다를 건너 한반도, 중국으로 부터 활발히 오가고 기술을 받아들였던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담지자(담대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오늘날도 배타고 멀리 나가면 무서울 것 같거든요.
비행기도 무섭고 배도 무섭고 으 무셔
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