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에서 8세기를 걸쳐 이 야마토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국가가 이 거대한 섬에 처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국호도 이 때에 비로소 '일본'이라고 정하고 왕의 칭호도 천황이라고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일본에 도입합니다. 본격적으로 국가라는 조직으로써의 체계적인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호적제도]
모든 백성의 이름과 연령을 호적에 기제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한 논을 수여, 이것을 기반으로 곡물과 토산물의 일부를 조세로 거두어들였습니다.
(많이 익숙하죠? 한국에서도 시행되었던 이 제도가 바로 수나라에 걸쳐 당나라 때 정비된 조세 제도였습니다.)
[행정제도]
이 호적을 기반으로 50호를 1리(향) 으로 단위를 지정해, 군.리(향)로 나누어 지방 행정제도를 세웠습니다.
일본의 이 행정제도는 철저한 문서주의였습니다. 모든 기관의 행정은 문서로 수행했었죠. 네, 바로 이런 행정제도 덕분에 한자를 포함한 글자가 일본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발달한 교통덕분에 각 지역의 특산물이 공납으로 바쳐져 수도(도읍지)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교통]
일본(야마토)의 교통은 육상교통이 도읍지를 중심으로 무려 수십미터 폭의 포장된 도로를 기반으로 닦여져 있었습니다. 도읍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그러한 직선도로가 있었고 이러한 발달된 교통이 이들이 행정제도를 세우고 발달시키는 대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덕분에 교통을 중심으로 숙박업과 기타 상업이 번창할 수 있었죠. 또한 조선통신사도 이런 훌륭한 도로와 상업의 발달, 일본인들의 독서율과 즐비한 서점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 돌아갔다고 합니다.
Tip! 이 때 갑자기 일본이 행정제도를 도입하거나 국호를 지은 것은 백제 멸망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의 인구가 자연증가율의 10배가 넘게 불었는데 신라의 삼국통일 당시 백제인들이 신라의 지배 밑에선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대규모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이 야마토 시대는 백제가 신라에게 패한 직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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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럼...!
한일합병과 임진왜란도...뭐, 쩝 쌤쌤이하는 걸로..ㅋㅋ
라고 하면 멍멍이 소리로 들릴까요??ㅋㅋㅋㅋ
물폭탄 한대 맞고 시작해야겠습니다.ㅋㅋ
아무튼 그러다가 10세기에는 간토 8개국과 이즈 지역을 기반으로 한 나라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또한 세토 내해를 중심으로 해적들이 판을 쳤고 '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왕조로부터 자립합니다.
*↑간토
↑후지. 하코네. 이즈 지역의 위치를 표시한 지역. 도쿄의 인근이다.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무사였고 해적이었다. ( 헤이안 시대는 794년~1185년)
그런데 바로 이 때가 신라에서도 해적이 기승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떤 일본역사 연구가들은 스미토모 세력이 신라와도 연동하고 있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기간에 평정되어 멸망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제 7부에서는 장원공령제도에 대해 소개할 것이고 그 이후로는 해적과 금융업자에 대한 소개가 차례대로 이어질 것 같네요. ^^ 국가제도가 세워지고 나라로써 선포한 시기 이후라 그런지 이 이후부터는 역사가 다소 복잡하고 지루합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짤방을 또 적절히 섞어야겠네요 ㅋㅋㅋ
개인적으로 해적과 악덕 금융업자들에 대한 자료가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그럼 여러분. 다음에 또 봐요!^^
여러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