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늘도 약속이 생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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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늦다면 늦은 나이에 창업을 준비중이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은 초록색이 없다.
그저 잿빛으로 물든 아스팔트 길과
바쁘게 달리는 차들의 매캐한 매연뿐이다.
평일에는 당연히
일을 하고 외주업체와 미팅을 하고,
또 일을하고, 또 외주업체와 미팅을 한다.
내가 갑일 때는 거드름도 피우고,
내가 을일 때는 간신처럼 히히덕거리며 재롱도 피운다.
그래서 평일은 지친다.
그러니 주말에는 쉬고 싶다.
하지만 이번 주말도 어김없이 약속이 생겼다.
이 전 직장, 나의 팀원들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거짓말을 강요했지만
그래도 너무 즐거웠던 '옛 기억'이 그 약속을 허락하게 했다.
이 때문에 옛 추억이란,
참 도움안되는 녀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오늘, 토요일.
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솔직히 말하면 반(半)백수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더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욱 멀끔하게 차려입었다.
약속장소에 나가고, 이 전 팀원들을 만났다.
다들 너무 반가웠다.
그 중에는 나와 똑같이 그만둔 아이들도,
다른 곳으로 이직한 아이들도,
고시생의 길로 빠진 아이들도,
그리고 계속 그 곳에 머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래도 나름,
서울에 살고 있는 20~30대라면,
혹은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기업에 다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선배들을 제치고 이른 나이에 부팀장이라는 직책도 달았다.
물론 회사의 직원들이 젊은층이다보니
중견기업치고는 빨리 부팀장을 단 것도 있다.
그런데 몇 년만에 만난,
그 곳에 머무는 아이가 바로 나의 위치까지 와 있었다.
그 녀석이 '부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 어깨에도 꽤나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멋지게 1차를 계산해버렸다.
질투나 시기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공허함이었다.
나에 대한,
무언가 말 할 수 없는 그런 공허함이었다.
그 공허함은 2차 때 그 녀석의 한마디로 더 커졌다.
부팀장님은 이럴거면 왜 나가셨어요.
그냥 남아있으면서 진급이나 하시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지금 일을 생각해보자면,
뭐...
할말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창업을 준비하면서
'을'을 연습했던 것 만큼이나,
히죽대면서 멋지게 받아쳤다.
난 월급을 받기보다, 월급을 주고 싶었으니까.
솔직히 우습다.
그 곳에 머무는 아이도,
아니 지금은 그 회사 부팀장도,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내가 그 회사에서 나온 이유는
CEO의 독단적인 경영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부팀장 주제에
감히 CEO와 한바탕하고 바로 나와버렸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오히려 지금의 '을' 역할이
그 CEO의 밑보다 더 억울하면 억울했지,
나아진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면, 가끔씩 하는 '갑'의 역할에 만족하려고
회사를 나온 것인가. 난?
과연 전 직장에서 때려친 '이유'가
지금 내가 헤쳐나가면서 '겪고 있는 일'과
무엇이 다른걸까.
결론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새벽일 것 같다.
사실 일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왕 생각이 많아진 김에,
응모도 할 겸 일기를 써본다.
아니면,
오늘 이 일을, 오늘 이 기억을
내일의 나에게 되뇌라고, 가슴깊이 박아 놓으라고
쓰는 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