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길은 언제나 설레지만
이번 여행의 의미는 각별했다.
벚꽃에 취해서 시작한 설레던 발걸음이
가파른 경사의 산길을 한시간넘게 올라서야 만날수 있었던
낯선 암자로 가면서부터 변해버릴줄 몰랐다.
사건의 진행에는 언제나 복선이 깔린다.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복선을 깔기 시작한다는 점이
연극과 다른 점이겠지만..
전날의 피로를 깨끗이 잊고 새로 맞이한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서 출발한다.
중앙시장에 들러서 서대와 양태 말린것을 한보따리씩 구입해서
차에다 싣고는 항상 그렇듯이 향일암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입구에 도달하니
평소에 다니던 우회로가 공사중이라 사용할 수 없으니
계단길로 올라가라고 한다.
왠지 하루의 시작부터 고된길이다.
많지는 않은 계단을 올라가니
길 한가운데 귀여운 동자승의 석상이 연이어 서있다.
대체 이 동자승에게 어떤 마음으로 돈을 잔뜩 안겨놓았을까?
부끄러워서인지
좋아서인지
입을 가리고 웃는 얼굴이 보는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초파일이 아직 한달남짓 남아있지만 사찰엔 벌써 연등이 잔뜩 걸려있다.
평소와 달리 번잡함이 느껴지지만
사찰입장에서는 또 이런 행사를 통해 유지비를 마련해야 할테니
그것도 마음편하게 바라보면 그뿐이다.
지난3년간 향일암을 오르내리면서도 처음으로 마주한거 같은 애기동백
개량종이 아니라 꽃이 작은것일까?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강한 느낌을 준다.
향일암은 여수여행에서 한번은 들러야 하는 목적지가 되었다.
기도를 하는것도 아니고
시주를 하는것도 아닌
그저
"그간에 이렇게 변했구나!"하는
거울로 나를 비춰보는것 같은 의미를 갖는 곳이다.
암자를 한바퀴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원효대사바위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모습들을 보면서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처음으로 '개도막걸리'를 두통샀다.
예전부터 꼭 마셔보려고 했던 막걸리인데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의 양옆에 있는 상점에서는
한통에 3천원을 달라기에 하산해서 마트에서 구입하려고 했다가
결국은 구입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엔 보이는대로 가까운 상점에 가서
2통에 5천원에 사들고 출발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벚꽃보러 하동으로 가기.
여수에 갔으면 영취산 진달래를 봐야 겠지만
다리와 허리가 성치 않으니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여수에서 광양을 거쳐 하동으로 하는 길이니
여수산업단지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영취산의 진달래를
먼발치로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산중턱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데
장관이다.
내년엔 꼭 영취산을 목적으로 봄맞이를 하기로 약속하고
차는 쌍계사를 향한다.
광양을 지나 하동으로 가는 섬진강길은 벚꽃이 장관이다.
'쌍계사 십리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긴 벚꽃길이다.
월요일인데도 쌍계사로 향하는 도로에 자동차가 메어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차량들은 전부 '화개장터'행이다.
길이 막히니 벚꽃구경이 더 쉽다.
마음편하게 벚꽃터널을 따라 섬진강변으로 늘어진 꽃들을 보며
봄나들이를 계속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쌍계사벚꽃십리길'을 지나 도착한 곳
지리산 쌍계사가 아닌
삼신산 쌍계사
마침내 왔다.
32년전 6월의 그 뜨거웠던 열망을 풀고
지리산에 올랐던 7명의 청춘들이 폭우를만나
종주를 포기하고 벽소령에서 하산해서 내려왔다가 들렀던 사찰
지금의 내 인생이 시작된 그곳에
어찌 이리 오랜만에 왔을까?
그때 들었던 이야기
'쌍계사에서 시작되는 이 길을
벚꽃이 휘날리는 시절에 남녀가 같이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 말대로 꽃피는 시절에 같이 걷지 못했지만
우여곡절끝에 가정을 이루어
꽃피는 계절에 찾아왔다고 마주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