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위험성

neojew(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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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선의 팔도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실었던 '택리지'라는 책
지역의 풍습을 토대로 거주민에 대한 평가를 내린 책인데
18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어쩐 일인지
지역적 특성을 바르게 평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론이 만들어진 중국에서는 이미
단지 하나의 견해로 평가절하된 '주자학'이
조선에서는 감히 거부할수없는 도그마가 되고
모두가 숭배하는 풍토가 된 것처럼
이중환의 택리지도
단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 처럼 신격화되어 받아들여졌고
지금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인들의 또다른 특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키우다가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힘을 얻게되면
그후로는
다른 어떤 목소리도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풍토

어쩌면 그런 경직성때문에
다음 독재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 전의 중독증상에 대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합리적으로 토의하는 문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거나
오늘 뉴스를 보니
다산선생의 제자였던 사람이
택리지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필사본이 발견되었다는군요.

전라도에 대한 박한 평가 뒤집은 택리지 필사본 발굴
https://news.v.daum.net/v/20181223063007157

지금까지 한국사회에는
전라도를 어떻게든 깔아뭉개려는 악의적인 시도들이
사회전역에 퍼져 있었지요.
불과 얼마전까지,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식모, 사기꾼, 깡패, 못배운사람 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강화되었을겁니다.
조선후기엔
그런 편견과 차별이 지금의 북한지역을 대상으로 일반화되어 있었지요.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때
반란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쓴 '격문'에도
서북지역에 대한 누적된 차별이 부당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불평등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니
어찌보면 인간사회가 존재하는한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표현이야 어떻든
차별과 불공평은 현실이고
그것을 통해 다시
신분의 차이가 강화되는 법이니까요.

누군가 평등을 내세우고 공정함을 내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현실의 불공정을 은폐하려는
듣기좋은 말에 불과한것도 사실입니다.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없고
오직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사실이겠지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단지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나의 견해를 갖는것을 넘어
그것을 일반적인 사실로 확장시키고
나의 영향을 받을 사람에게 그 견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편견을 최소화하도록 넓게 보기위해 노력하고
가급적 나의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것이
경험을 기반으로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이 취할
지혜일거 같습니다.

이래저래
말이나 글은
진퇴가 어려운 처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