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름의 기억 '산사람'

neojew(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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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람'을 인터넷 다음에서 검색하면
주로 산에서 생활을 하며 산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
이라고 나온다.

그외에도 다양한 연관 정보들이 순식간에 화면을 채운다.
하지만,
1987년에
그것도 일부학생들이 주고받던 '산사람'이란 이름은
오늘날과 같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해여름 갑작스러운 6.29선언으로 시민운동이 소강기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지리산종주를 결심했다.
물론 목적은 한가지 있었다.

'파르티잔의 자취'를 느껴보려던 것

마침 그해 7월에 태풍이 왔고 남부지방에 피해가 있었다.
그래도 출발할것인가를 놓고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지리산이니까 괜찮아."

지리산 종주를 떠난다는 말을 전해들은 친한 후배한명이
"형 조심해요. 거긴 아직도 산사람들이 있다니까.."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이미 34년이 지난 시절이었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아직 6.25가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던 시절

4명이 가려던 계획에
여동생과 그 친구들이 따라나서는 바람에
7명의 청춘들이 8월4일밤 영등포역에서 출발 남원역에서 하차후
백무동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석봉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할때
지리산능선을 타고 덮여있던 구름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검은빛으로 보이는 지리산의 장엄한 산세를 보면서
왠지모를 숙연함을 느꼈다.

다음날 천왕봉을거쳐 세석에 다다랐을때
그 높은 고산지대를 날아다니던 붉은 잠자리떼를 기억한다.
'빨치산의 원혼'이 날아다니는 것이라는게
토속적인 해석이었다.

그날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다음날아침엔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텐트를 걷고
잠깐의 토의를 거쳐서 중도에 하산하기로 한다.
하산지점은 '벽소령'
벽소령에 도달할 무렵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로 눈을 뜨기가 힘들정도였다.

벽소령 표지판을 만났을때의 안도감이란
더할나위 없이 컸지만
그건 새로운 위험의 시작이었다.

오랜 일이라 기억나지 않았지만
벽소령에서 하산하면 만나는 마을이 '의신마을'
나무가지에 묶여있는 천조각과 인적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길이 끊어지거나 인적을 찾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가파른 경사에 질퍽거리는 흙으로 뒤덮인
키작은 대나무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원점으로 돌아가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다시 길을 찾아 내려가면서
어두워지기전에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등산계획을 세우고 코스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의 부담감

이런저런 불안함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면서 한참을 내려가니
어둑해지지기 시작할무렵에 눈앞에 나타난 '산비탈의 논'

그논은 구세주같았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그렇게 마을에 도착했고
이집저집 수소문끝에 겨우 작은 방하나를 구했다.

'서울에있는 학교간 아들이 쓰던 방'은 발을 펴기에도 불편할정도로
좁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구부린채 밤을 새웠지만
산속에서 노숙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나오는길에 중간에 내려서 들렀던 곳이
'쌍계사'

누군가 말했다.
"쌍계사 벚꽃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가슴셀레는 말이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지리산 종주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나의 인생엔 배우자와 함께한 최소의 등산이 되었다.

3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떤 연유에선지 그 마을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지도를 보면서 기억을 되살려 마을의 위치를 추정하고
다른마을과 비교를 하면서 대략의 확신을 가졌다.

단지 쌍계사로 이어지는 산끝자락의 마을

이번 남도여행에서
그 기억을 가지고 쌍계사를 둘러본후 마을을 향해 출발을 했다.
구비구비 산길을 따라 올라가길 한참만에
기억속의 풍경과는 한참다른 마을이 나타났다.

차를 세우고 좁은 마을을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과거의 기억으로 연결되는 실마리를 찾아본다.
그때 그 민박집은 어디였는가.

그런 나의 눈에 띈 생소한 풍경
이 산속마을에 이렇게 잘 가꿔진 평지가 있다.
그리고 커다란 안내판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

소위 이현상의 부대였던 '남부군'의 토벌루트다.

가까이 다가가서 지도를 살펴본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 우리가 내려온길은 '남부군'의 토벌루트였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목숨을 잃었고
우리는 간신히 살길을 찾았다.

단지 수십년이라는 세월속에
같은 장소에서 삶의 궤적은 그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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