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nte La Reina to Estella
혼자 새벽길을 나선다… 이날 새벽을 마지막으로 내 헤드 랜턴은 완전 고장이 났고, 그 뒤로 난 새벽길을 밝힐 수 없게 되고 다른 순례자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였다.
뭐 그냥 그룹으로 가는 순례자들 뒤를 조용히 따르면 된다. 그러다가 인사 하고 이야기하고
순례길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새벽에 혼자 걷는다. 마음이 고요하다.
길도 고요하고…. 걸음에만 집중하고 동적 명상을 하기에 아주 좋다. 행·복.하.다.
이날은 새벽에 혼자 걷는 길과 사랑에 빠진 날이다.
혼자 걸어가다 보면 순례자들을 만나고 그래서 발걸음이 맞으면 같이 걷고, 아니면 또 혼자 가고 그러는데,
외국 순례자들은 이런 부분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진 듯 하다.
물론 그룹으로 다니는 분들도 많고….
태양이 점점 뜨거워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 파란 하늘은 나에게 늘 행복이다.
독일에서 온 순례자와 우연히 발이 맞아 같이 걷기 시작한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묻는 말. 그런데 왜 이리 한국인이 많아? 뭐?? 한국인이 많니?
오히려 내가 되묻는다. 그렇다 까미노 길에는 한국인이 엄청 많다. 한국이 살기 어려워서 너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해야 하고, 오랜 시간 근무해야 하기에 많은 사람이 과로와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 있다고…. 일과 삶의 균형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그리고 이 길이 한국에서 꽤 유명한 길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렇게 또 한참 한국의 복지와 유럽 나라들의 복지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유럽으로 이민 가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걷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다.
한참을 가다가 미겔을 만나 같이 걸었다. 가방을 멘 허리와 다리를 엄청 아파하는 그는 정말 힘들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보기가 참 안쓰러웠다. 사고후 수술로 한쪽 다리를 많이 아파했던 바욘에서부터 만나 팜플로나에서 헤어진 게이타노가 생각났다. 알베르게 에 도착해 난 가져온 파스를 미겔에게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져온 비상 약품들은 나는 하나도 안 쓰고 모두 다른 순례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
어쩌면 카미노 산티아고의 현실은…. 사실 고생…. 고생…. 생고생일지도 모르겠다. 피레네를 걷는 그 순간부터 고생의 연속이다. 아니 카미노를 결정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 순간부터 고생의 시작이다.
문득 지금 나와 노숙자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니 별로 다를 게 없다. 노숙자의 봉지가 어쩌면 내 배낭으로…. 비바람 피할 곳 없는 길에서의 잠이 알베르게라는 숙소로……. 배고픔은 미국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거 같다. 사실 끼니때가 한참 지났음에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몸이 긴장되어 있는 듯하다. 아니면 저장된 게 많아서 그런가? -_-;;
아… 내 몸이 간직한 이 스트레스 잔여물이 좀 떨어졌으면… 어떻든 그래도 걸어야 하니까 먹을 수 있을 때먹어 둔다. 시차 때문인지 몸이 피곤함에도 새벽 두세 시면 눈이 떠져 다시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그렇게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눈뜨자마자 걷고 힘들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쉬고 다시 걷고 걷다가 하룻밤 머무를 곳을 찾아와 빨래할 기력과 날씨가 되면 빨래를 하고 아니면 그냥 더러운 채로 남긴다.
무엇을 입을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슈퍼를 만나면 적당히 먹을 것을 사고 아니면 마는 거다. 다 귀찮아져서 언제부터 인가 샴푸 하나로 빨래 세수까지 한 번에 끝내고 있다. 샴푸로 세수한다고 내 얼굴에 두드러기는 나지 않고 있으니 된 거지 또 좀 나면 어때…. 아…. 근데 말이다…. 단순한 이 삶이 점점 좋아진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 이곳을 이미 사랑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도 꽤 단순하다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몸은 말로 할 수 없이 힘든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H 언니를 다시 만났고, 프랑스에서 온 르단이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르단이의 첫 인상은 참 착했고 행동은 참 특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