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zur Minor - Zariquiegui
Cizur Minor 알베르게에서는 연세가 있으신 애리조나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있으셨다. 혼자 이 길에 서셨고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나를 보자마자 핸드폰을 열어 자녀들 사진을 보여 주신다. 아… 28년 전에 한국인 두 명을 입양해서 키운 그녀…잠들기 전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난 네가 내일 꼭 나 묵는 곳에서 같이 묵고 나와 용서의 언덕을 같이 올라갔으면 좋겠어.” 라고 말씀을 하시고 잠자리에 드신다. 나와 함께 용서의 언덕을 오르고 싶다고 하신 건… 벌써 두 번째 인가…아까 같이 이야기 하시던 분들은 일행이 아니었나? 아...난 차마 이분을 뿌리치지 못할 것 같다.
그 당시 그분께는 내가 필요 했을 거다. 내가 그분과 묵으려면 난 하루 갈 길을 반으로 나누어야 한다.
뭐 그래…. 내 다리도 아프고 그러지 모….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으나, 아픔은 남아 있다. 지금 돌아보면 까미노 길을 걷는 동안 나에겐 몇 번의 외부 변화를 가져오는 시점이 있었고 그중의 하나는 바로 애리조나 아주머니와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혼자 시작한 까미노는 여러 순례자를 만나 때로는 같이 걷기도 하는데… 어쩌면 어떠한 순례자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내가 하는 생각들이, 그리고 어쩌면 나의 까미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내적인 성찰이나, 자신이 찾고자 하는 그 어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영향은 크게 달라지고 크고 작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내 생각일 뿐이다.)
생장보다 그 이전 바욘 기차역에서부터 만난 이들과의 이별… 난 애리조나 어머니를 봐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나를 바욘에서부터 끔찍이 챙기는 이탈리안 왕언니 페트리시아를 비롯해 생장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과도 헤어져야 했다.
나와 헤어지던 그때 페트리시아의 얼굴을 난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가족을 떼어 놓는 듯한 그 얼굴…. 아…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그건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음을 25일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만약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난 절대 바욘에서부터 만난 그녀와의 이별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녀와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그녀의 그 애잔한 눈빛이 아직도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동생을 잃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난 그녀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에 가득했던 슬픔보다 더 슬픈 눈빛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한 건지…내가 정말 그녀를 마음으로 이해했더라면 난 그곳에서 그녀와 같이 갔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옮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에 마음이 아프다.
아픈 마음으로 짐을 풀고, 미국에 있는 소중한 친구에게 엽서를 쓰고, 애리조나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날 소등 할 때까지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 같은 마음인가 보다.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배 아파 아이를 낳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하나…(나이로는 애를 셋을 낳았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나이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결혼을 안했고.. 아니 못했나.. 어떻든 나는 아이가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깊이를 헤아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
순간… 내 어머니의 생각에 마음이 콕콕 아파졌다. 나의 엄마와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보게 되다니… 어쩌면 나의 엄마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이,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들기전 애리조나 어머니를 꼬옥 안아 드렸다. 괜찮다고…. 이제는 더 행복하실 거라고…. 벌써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몇 번이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조가비 모양의 기계수를 나에게 주었다. 미국에서 친구가 25개를 만들어 주었는데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순례자 중에 제일 고맙다고 생각되는 순례자들에게 주라고… 나에게 그 수를 주며 아주머니는 말씀하신다. “M~ 네가 나를 감동을 주고,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제일 첫 번째 순례자야”. 라고.
나는 그저 말씀을 들어 드렸을 뿐인데…. 내게 너무 과분하다고 했으나 또 어른의 마음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것 같아 감사히 받아들고 침대로 돌아왔다.
조가비 수를 받아 가방에 묶는데, 난 페트리시아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제발 그녀가 걷는 이 길이 행복으로 가득하길...
(그 뒤로 페트리시아 소식을 가끔 들었다. 그녀는 부산 청년과도 헤어져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들과 아주 행복하게 까미노를 마쳤다. 그리고 유럽 집으로 돌아가 조금씩 시간을 내어 까미노의 다른 길을 꾸준히 걷고 있다. 가끔 그녀가 보내주는 걷는 사진은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에 엄청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