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reiros to Eirexe
어둡다. 헤드랜턴도 없이 산에서 내려간다는 건 위험하다. 그래도 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조심조심...너무 어두워서 돌밭 산길에 내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뻗었다가 돌에 걸려 발목 삐기에 십상이다. 물론 만약 넘어져서 이 돌길에 발목만 삐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초집중을 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 어디서 나타났는지 르단이가 자신을 따라서 오라며 앞서서 간다. 오세브레이로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르단이가 내 길을 밝혀준다. 참 고마운 친구다.
그렇게 돌길 어둠의 산속을 조심조심 무사히 내려왔을 때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
온몸에 소름……..
그야 말로 감동의 도가니…
포르토마린…
아…. 포르토마린의 여명을 난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평생 내 가슴에 살아서 나를 수시로 지금의 이 여명 속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것을…
수많은 아름다운 여명중에서 내 심장에 각인이 된 여명 중 하나.. 포르토마린 가는 길… 인간의 말로는 모라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걷던 걸음을 계속 걸을 수가 없었다.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걷는 것이 아까웠다. 저 멀리 보이는 순례자가 그 경치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꿈속 그림 같은 장면. 오월의 락일락 향기와 색을 하늘에 뿌린듯한 연보라 색과 몽롱한 꿈 같은 연한 하늘색 그사이 사이를 따뜻하게 스며든 살구색의 완벽한 조화. 그 신비한 하늘 아래 금방 산신령이 나와도 믿을 것 같은 하이얀 물안개가 감싸 안은 도시 포르토마린..
산을 내려오는 모든 순례자들은 눈앞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모두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살며시 눈을 감아 본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여명을 상상한다. 다시 눈을 뜬다. 반복한다. 내 기억에 내 심장에 넣고 싶은 이 풍경 그리고 지금의 느낌. 눈을 떴을 때나 눈을 감았을 때나 이 그림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내가 붓을 들고 그리듯 가만히 서서 눈으로 가슴과 머리에 그려 넣는다.
내 가슴이 너무 뜨거워진다.
아주 오래 이곳에 서 있었고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나라도 놓칠까 봐 아주 천천히 걸으며 이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즐겼다.
이 아름다운 풍경,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순례자들이 걸어간 그 길 위에 내 발자국을 입히는 것은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내 심장을 뛰게 한다.
Eirexe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K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기 전까지 알베르게에 등록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곳 알베르게로 안 오면 다른 곳으로 갈 사람처럼...
이 친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이리 잘 알까? 나의 물음에 K는 ‘그냥 다 알아요' 라고 말할뿐 어떻게 알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 만에 보는 K가 꽤 반갑다. 나는 K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 했다. 한의쌤이16일까지만 산티아고에 계실거고, 모두 그 날짜에 맞춰서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고...그래도 이곳에서 한솥밥을 먹었는데 모두 만나 인사는 해야 할 것 같다고, 마침 Y언니도 저 멀리에서 버스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고…바욘에서부터 만났던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것이 너무 아파서 나머지 사람들은 다 보고 헤어지고 싶다고... 조용히 내 이야기를 다 들은 K는 나와 일정을 맞추어서 함께 16일까지 산티아고에 입성하기로 했다.
K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곳 알베르게에서 K를 다시 만났을 때, 난 이미 K와 같이 가기로 결정했었고, 그 결정에는 K가 그 어떤 짜증이나 불평을 해도 다 받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겠다고 물을 끓이다가 팔을 데었다.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다. 늘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고가 난다. 데이거나, 베이거나 아니면 잃어버리거나...까미노라고 해서 다른 건 없는 듯하다. 엄청 화끈거리는데.. 약도 없고 그냥 참는다. 까미노에서 화상이라니... 나도 참 가지가지 한다. 그래도 다행히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층 침대로 올라오니 새로 오신 분들이 내 맞은편 침대를 쓰신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눈으로 난로 위에 있어야 할 양말이 잘 있나 본다. 없다! 맞은편에 계신 분들을 다시 본다. 두 분은 서로의 챙김이 각별해 보인다. 난로 위에 있는 양말과 장갑이 그분들의 것인지 물어본다. 그렇다고 한다. 함께 써야 하는 난로에 널어놓은 내 양말을 창틀 위로 치워 버리고 본인들 것을 난로 위에 올려놓은 거다. 나는 양말 잃어버려서 널어놓은 거 안 마르면 안 되는데...
난로 위에서 치워져 내팽개쳐 버린 나의 양말을 보니 괜히 마음이 꼬인다. 벌떡 일어나 그분들 양말과 장갑을 조금 가깝게 놓고 내 양말을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 충분히 다 올려질 수 있는데 왜 내 양말을 꼭 치워 놨어야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데인 팔이 여전히 아프다. 두 분은 여전히 서로를 챙기시는데 보아하니 아주머니가 침낭이 없어서 아저씨가 맘이 안 좋은 모양이다. 본인 침낭빌려 주고 추운지 확인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침낭이 없는 아저씨가 더 추울 것 같은데…
(kings of convenience - surprise ice - 음악이 다소 우울하실 수 있습니다 )
자려고 누웠으나 데인 팔이 화끈거려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공기도 차고 알베르게도 추운데 데인 팔 한쪽만이 너무 뜨겁다. 벌떡 일어나 샤워실로가서 차가운 물에 팔을 씻어낸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여전히 화끈 화끈 뜨겁다. 다시 벌떡 일어나 가방 안에서 짚락 하나를 찾아내어 그 안에 찬물을 받아왔다.
침대 위에 물이 든 짚락을 가만히 올려놓는다. 짚락이 터지면 다 젖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옆으로 누워 화끈거리는 한쪽 팔을 찬물이 든 짚락위에 조심히 올려 놓는다.
화끈거림이 아주 서서히 조금 가라앉는 동시에 살며시 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줄기...
아프다. 다시는 데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