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_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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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gos to Hornillos del Carmino

(Camino는 3단계로 보통 나뉜다고 한다. 처음 10일은 Physical Journey, 그다음은 Emotional Journey, 또 그다음 Spiritual Journey 이걸 미리 알았으면 내 감정기가 조금은 쉽게 이해가 되었을까? 아마도 브루고스에서 H언니와의 이별을 시점으로 나는 이미 감정기에 접어든 것이 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의 길고 긴 Emotional Journey가 이미 시작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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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언니를 보내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혹시라도 H 언니 가는 걸 못 보게 될까 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H 언니에게 줄 엽서를 쓰고 언니가 일어나 나올 때까지 계단 복도에서 기다렸다. 너무나 차가운 언니 모습에 다시 또 당황하기는 했으나 뭐 그게 언니 모습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다. 나와 눈도 마주치는 않는 언니에게 엽서를 주고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들려 했으나 잠은 더이상 오지 않는다. 꽤 이른 새벽 알베르게를 나와 다른 순례자 뒤를 따른다.. 엄청 이른 시간인데도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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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렌턴이 없어서 이른 아침 나올 때는 항상 조금 불편하다.
지금 나에겐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무지 언니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아 마음이 심란 하거든. 왜 아파야 하지? 그것조차도 모르겠다... 기대하고 호의를 베푼 게 아니잖아… 근데 왜 아프냐고 도대체... 그래.. 아무런 기대 같은 건 없었다. 풀리지 않는 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거다. 언니랑 헤어지는 것도 너무 슬픈데 언니는 왜 그리 화를 내고 떠나야 했을까? 단순히 기다려서 화를 내는건 아니었을 꺼다. 아니... 정말 어쩌면 그래서 화가 난거 일수도...나는 무엇을 놓친 걸까? 언니는 내가 물어도 왜 솔직히 말을 하지 않았을까? 대화 조차 하기 싫었나?
잘 되던 소통이 왜 갑자기 멈추어져야 했을까? 왜…
나는 언니가 아니고, 언니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언니가 왜 화가 났는지 정확히 알겠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는 건 정말 오래 만난 친구나 연인들, 오래 만나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은 당연히 간단한 말 한마디에도 깊이를 끌어낼 수 있지. 하지만 우린 그게 아니잖아.
아.. 그런데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이제 다시는 못 볼 텐데.. 이렇게 헤어져야 했다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찌 되었건 나는 내가 H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줬으니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지만 그래도, 마음은 너무 아프고, 진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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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너무 잘하는 나는 감정이 예민하다. 사람들과의 감정, 예술 작품 뭐 이런 거에 대한 공감이 좀 유별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점점 예민해져 가고 있다.

Hornillos del Carmino까지는 혼자 걸었다. 조용히 혼자 걷고 싶었다. 혼자 걸으면서 언니와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너무 오랜만에 가져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을 걸을 뿐 이었다.
어느 정도 H언니로 인해 지친 내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조용히 혼자 있기를 원했다. 내가 조용히 혼자 있기를 원하는 건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이 지쳐 있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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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알베르게다.

(이날 이곳 알베르게에는 유난히 한국 순례자 분들이 많이 계셨다. 대구에서 오신 연세가 좀 많아 보이시는 두 할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는 걸음이 꽤나 빠르셔서 이날 이후로 한 번도 뵐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 알베르게에서 내 까미노의 감정기 기.승.전.결 중 “승” 을 만들어준 Y언니를 만나게 된다.)

르단이가 같은 알베르게에 있다. 한국인이 많아서 인지 완전 신이 났다. 한의쌤은 르단이의 행동을 다 받아 주시고 그런 한의쌤 태도에 엄청 행복해 하는 르단이는 악기를 꺼내 들고 연주를 한다. 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르단이가 가지고 있던 희안한 악기.. 하모니카도 가지고 있고.. 흥이 많은 친구다. 알베르게 앞에서 잠시 르단이와 한의쌤의 연주를 들으며 햇빛을 쬔다. 알 수 없는 악기 소리가 따뜻한 햇살 사이를 파고 든다. 눅눅한 내 마음이 조금은 펴지는 듯 웃음이 머문다. 이곳에서 Y언니를 처음 만났다. Y언니는 신기하게도 르단이와 참 잘 통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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