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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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rono - Naj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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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난 딱 세장의 사진밖에 찍지 못했다.)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역시나 너무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미리 미겔에게는 말을 했으니 얼른 가방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한다. 랜턴이 없어서 다른 순례자들이 나가면 같이 나가려고 기다리는데 아무도 나오지를 않고, 그냥 혼자 알베르게를 나온다. 도시라서 가로등 불빛으로 길이 환하다. 다행이다 싶어 얼른 노란 화살표를 찾아 한발 한발 다시 움직인다. 지도도 없이 그렇게 노란 화살표 하나만 보고 걷는 이 길.

그렇게 혼자 도시를 빠져나오다가 난 길을 잃었다. 한 시간쯤 가도 화살표가 보이지 않고…, 갑자기 겁이 덜컥 나고… 해도 뜨지 않아 아직은 어두운 새벽 아침에 마침 저 멀리에서 오는 커플이 보여서 길을 물어보니 지금까지 온길로 되돌아 가라고 한다. 뒤돌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한참을 가서야 갈림길이 보이고, 화살표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고 이쪽 길이라며 같이 걷자고 부르는 순례자들. 딱 그 갈림길에서 그룹으로 가는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나 천만다행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그들과 같이 걷기 시작한다. 브라질에서부터 같이 온 이들과 생장에서 만난 순례자들이 합쳐진 아주 행복한 그룹과의 행복한 만남이었다.

Najera까지 31.5 KM. 처음 도전하는 31.5KM. 작은 가게에서 잠시 쉬고,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 점심은 중간 마을이 있는 Ventosa라는 마을에서 먹을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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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가다 보니 길 중간에 큰 지도가 붙어 있다. 자세히 지도를 보니 Ventosa는 2KM를 더 우회해야 한다. 잠시 고민에 들어간다. Ventosa에 들렸다가 Najera까지 간다는 건 너무 무리다. 그렇다고 베토사로 가서 쉬기엔 너무 짧게 걷고...그냥 Najera 까지 가자니 중간에 가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난 그냥 처음 생각한 데로 Najera까지 가기로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만난 작은 가게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겼어야 하는 거였는데… 살면서도 늘 엉뚱하게 생긴 변수로 인해 계획한 일에 변화가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인생이라니.

걸음이 빠른 브라질 순례자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나 걸었을까...점심도 못 먹고 물까지 떨어져 한참 걷다 보니 갈증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 같다. 내 눈앞에 보이는 순례자는 저 멀리….
너무 멀어서 내가 저기까지 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뒤를돌아 보아도 아무도 안 보인다. 순례길에 가끔 있는 수도꼭지는 이 길에서 왜 하나도 안 보이지? 내가 모르고 지나쳤나? 걷는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거 같다. 스페인의 작렬한 태양아래 내 몸이 땅속으로 녹아내리는 거 같다. 왠지 내가 여기에서 걸음을 멈추면 그대로 쓰러져 탈진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점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나는 작은 포도밭을 지나가게 되었다. 순례자들 제발 포도 따먹지 말라고 하는 말을 읽었던가? 포도 밭이 조금 더 크기라도 하면 덜 미안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내 손은 이미 작은 포도송이를 서리 하려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에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포도 한 송이를 살짝 서리했다. 아…, 그 포도송이 아니었으면 난 절대 그 뜨거운 태양 아래 Najera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아찔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처음 30km 넘게 걸은 증거물처럼 발에는 물집이 생겼고,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무거운 몸으로 Najera 숙소에 짐을 풀며 생각한다. 다시는 하루에 30Km 넘게 걷는 행동은 하지 말자고…
( 사실 이날의 고생으로 다시는 하루에 30km 넘는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나중에 그 다짐은 뭐 다 소용없게 된다. 800KM를 하루에 25킬로미터 정도로 처음 부터 잘 나누어, 처음 부터 끝까지 체력을 잘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나중에 엄청나게, 눈물 쏙 빠지게 내 몸을 혹사(?)하게 된다. 며칠이 지나 H언니로 부터 들은 정보에 의하면 Ventosa가 또 너무 아름답고 평온한 마을 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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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jera 공립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배정받고 완전 놀랬다. 10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고 침대 마저 같이 붙어 있다. 냄새 장난 아니고, 샤워실도 남녀 각각 두 개. 어찌 보면 수용소 같은 느낌도 날 수 있는데… 까미노에서 이러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이곳이 뭐 조금 심하긴 했으나, 나는 너무너무 힘들었기에 내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브라질 순례자들은 힘들어서 씻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나를 보고 먼저 먹어야 할 것 같다며 나를 끌고 식당으로 갔다. 그들과 같이 밥을 먹으며 한참 웃다 보니 내 몸의 피로가 다 날아 가는 듯하다. 역시 웃음 만한 약이 없는 건가…

Najera 공립 알베르게 이곳에서 꽤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S군, C양, K군 그리고 동부 아주머니를 만났고 아마도 내일 그들과 같이 움직이게 될 것 같다.. 침대로 돌아 온 지금 내 몸이 내 몸이 아닌듯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프다.

(Najera에서 한국인들과 만남을 시작으로 나의 카미노는 외부 영향을 다시 받게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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