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ga to Foncebadon
6:30분에 문을 연 카페에서 핫 쵸코를 주문했다. 따뜻한 핫쵸코가 나를 따뜻하고, 달콤하게 감싸 안는다. 난 엽서를 꺼내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다. 철의 십자가에 놓을 돌도 꺼내 본다. 참 작고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K군은 길이 엇갈렸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와 혼자 걷는다. (나중에서야 K는 다른 카페에 갔다가 내가 없어서 먼저 갔다는 걸 듣게 된다)
비가 오는 듯 안 오는듯한 새벽길… 혼자 걸어가는 길이 그저 평화롭다. 철의 십자가를 내일 지나기 때문일까.. 비가 오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새벽에 혼자 걸어서 그런 건가...마음이 조금은 진지한 듯 차분한 듯 고요하니 너무 좋다. 얼마 동안 걸은 걸까? 처음에는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약해서 우비를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비가 점점 많이 내린다. 우비를 꺼내려고 보니… 아...우비가 나와 함께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제 알베르게에 침대 모퉁이에 걸어 놓은 걸 그냥 두고 나온 거다. 아… 또 이런 일이...진짜..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건지…
지금이 10월인데 이제 비가 오기 시작할 텐데… 아직 갈 길이 남았는데… 뒤를 돌아본다. 이미 밝아진 길이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다시 알베르게로 되돌아 가기에는 나는 너무 먼 길을 걸어 온 듯 하다.
인생에서도 이럴 때가 있다… 때를 놓치고.. 돌아 가야 하나 하고 생각이 들어 주의를 둘러보면,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고 느껴질 때…
나는 그냥 비를 맞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조금 지나 다시 하늘이 맑아진다.
마법사가 주문을 건 게아닐까... Somoza 마을이 저 뒤에 있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저기 저곳에서 하루 머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이나믹한 뭔가가 일어날 거 같은 저 느낌.. 신비한 물고기가 앞에 고여 있는 물에 뛰어 들어서 저어기 마을 앞으로 뛰어 나올거 같다. 저 길을 지나가면 어떤 일이 생기는 거지? 뭔가 엄청 신기한 동물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또 한참 가고 있는데 저기 어마어마하게 큰 무지개가 보인다. 한 번에 다 담기지 않아 반반 나누어 찍어야 했을 만큼 크다. 저 무지개를 통과하면 마법사의 주문에 걸리는 거 아닐까?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뛴다. 무지개 아래를 통과 한다. 사실 어릴때 기억이 나서 무지개 아래 쯤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무지개가 너무 신기해서 동네 친구들과 함께 무지개를 따라 무조건 걸었던 그시절, 무지개가 뜬 날이면 집을 잃고 헤매기도 많이 해서 엄마께 꾸중도 많이 들었던 그때.. 내 어린 시절...
젖은 옷이 이제 겨우 마른 거같은데...다시 또 비가 온다. 그러다가 비가 멈추고 이제는 바람이 분다. 나의 옷이 바람에 마르는 듯 으스스 춥다. 한참 또 그리 가다 보니.. 또 비가 온다.. 것도 좀 많이… 잠시 지나던 길에 있는 작은 bar에 들러 강한 비를 피한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가고 보슬비로 바뀌었을 때 다시 바를 나와 길을 걷는다. 바람에 말랐던 옷이 보슬비에 다시 젖는다. 그렇게 옷이 다 젖으면 또 해가 나온다. 무지개도 나와 주시고, 나는 또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며 좋아라 싱글벙글 사진 찍고, 혼자 흥얼거리고...그랬다. Foncebadon 가는 길은 신기했다. 경치가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경치를 뒤로 하고 걷는 것이 아까울 정도 였다. 날씨 또한, 비가 오락가락, 해가 들락날락, 바람이 살랑살랑~ 입고 있는 옷이 말랐다가 젖었다가.. 말랐다가… 젖었다가...
마.치. 내. 인.생. 같.다.
나는 Foncebadon 가는 길 내내 너무 감사했다. 계속 비만 오면 우비도 없는데 이 길을 어떻게 끝까지 걸었겠는가…
한의쌤은 어디로 가면 사람이 적은 알베르게에 묵을 수 있는지, 어느 지역이 아름다운지 정보를 보내 주셨다. 한번 와보셨고, 앞서가시는 한의쌤은 알찬 정보들을 보내 주셨고, 지도도 알베르게 정보도 없는 나는 그런 한의쌤의 도움이 너무 너무 고마웠다. Foncebadon 알베르게도 한의쌤의 추천으로 묵게 되었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작다... 16명 정도 묵을 수 있나? 수도자 한 분께서 운영하시고 계셨다. 너무 작고 혼자 운영하시는 것이 고생스러워 보여서 다른 알베르게에 내는 금액보다 조금 더 되는 금액을 도네이션 했다. 작고 아담하고 따뜻한 곳이다. 이곳 샤워실은 무척 작은데,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는 뜨거운 물을 만났다. 뜨거운 물. 그야 말로 HOT WATER!!! 온종일 비를 맞고, 마르고를 반복 했던 나에게 주어진 이 뜨거운 물이 주는 감동에 밀려오는 행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가는 길이 뻔해서 그런가….아니면 나 있는 곳을 알고 오는 것인가….K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알베르게 건너편으로 아주 작은 슈퍼가 있고 이 층으로 올라가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게 공간이 꾸며져 있다. 아름다운 편안한 가정집 카페 같은 느낌의 따뜻한 공간. K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곳에서 한참을 보냈다. 어찌나 편안하던지.. 쇼파에서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저녁 만드는 것을 도와 드리려 편안한 녹색 공간을 나와 알베르게로 돌아 왔다.
수도자님이 스프 준비하시고 나는 야채와 과일을 썰고, K군도 옆에서 돕는다. 걷지 않을때 K는 참 착하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따뜻한 대화가 오고 가는 저녁. 비가와서 알베르게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났으나, 그 냄새를 잊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곳에서의 하룻밤.
비는 계속 내리고, 널어 놓은 빨래는 왠지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