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munkihun입니다.
전에도 한번 소개된 적이 있듯, 역사적으로 유례가 깊은 동산절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선 오래전부터 걸신(乞神)들린 무당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오늘은 그 무당 이야기좀 해볼까 합니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당진 ic로 빠져서 합덕 방향으로 가다보면 독암 고개가 나오고, 독암 고개를 넘으면 바로 동산절 방향으로 빠지는 길이 보이는데, 그 마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입니다.
동산절에서 그 무당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바로는 “걸신(乞神)이 들려 어찌나 밥을 많이 먹던지 한 끼에 너댓 밥주발(밥사발)로 먹어 치웠다. 그럼에도 그 무당은 항상 허기를 느꼈고, 신굿을 나가면 그 집에서 보름이고 한 달이고 눌러 앉아 밥을 축내어 그를 반겨하는 이가 없었다. 밖을 나설 때는 얼굴을 천으로 꼭 가리며, 하루에 5번 천신에 절을 한다. 사람들은 그 무당을 복만 엄마라고 불렀다”라고 전해집니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걸신들린 사람들이 허겁지겁 밥먹는 모습이 저와 같았을까? 밥그릇 크기가 인상적이다>
사실 전승되는 이 설화는 여러가지 역사적 정보들을 내포 하고 있답니다.
즉, 설화가 유례된 시기, 복만 엄마의 국적 , 당시 나라의 대외적 교류 등을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동산절에 대해 말씀드렸듯 이 지역은 항로를 이용해 직접 중국과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입니다. 위 설화를 토대로 분석해 보자면,
밖을 나설 때 얼굴을 천으로 가린다는 것은 아랍의 챠도르를 생각할 수 있고, 하루 5번 천신에 절을 한다는 것은 이슬람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며, 걸신이 들렸다고 표현할 정도로 밥을 많이 먹었다는 것은 아라비아를 예로부터 대식국(大食國)이라고 했고, 아라비아인을 대식국인(大食國人)이라고 칭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라비아와 우리나라가 교류를 시작했던 시기는 고려시대이며(10세기 말에서 11세기 중엽), 이때 송나라를 경유하여 이루어 졌던 것이고, 위의 복만 엄마는 아라비아에서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넘어와 어떠한 이유에서 고려에 정착하게 된 아라비아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굿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형태의 굿이 아니라, 이슬람 율법에 따른 종교의식 내지 종교행위였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복만 엄마가 “너댓 밥주발”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략 그 양은 얼마가 되는지도 자못 궁금해지는데, 밥그릇 크기를 역사적으로 비교해 보면 현재는 약 350g, 조선은 690g, 고려는 1,040g 정도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밥상, 어마어마한 크기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놀랍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그렇다면 당시 밥그릇은 현재 밥그릇의 약 3배 크기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지금 밥공기의 3배정도 되는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4~5그릇을 먹어 치운 셈이 되는 것입니다.
즉, 현재 기준 10인용 전기밥솥에 가득 밥을 해서 혼자 다 먹어도 부족할 정도로 먹어 치웠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대식국(大食國) 사람다운 식성이었군요.
참고로 위 사진은 프랑스 엽서에 실린 1860년대 조선의 밥상사진입니다. 고려는 이보다도 밥그릇이 더욱 컸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영양섭취가 고르지 못하였고, 조선보다는 고려가 특히 육류 섭취를 더욱 못하였기 때문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오직 밥에만 의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감안하더라도 복만 엄마의 식성은 굶어 죽은 귀신이 씌지 않은 이상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남의 집에서 눌러 앉아 가지 않고 남의 집 밥이나 많이 축내는 사람'을 타박하며 "복만 엄마같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의 구전설화를 가지고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해 봤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또 다른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