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행담도에 얽힌 얘기와 은둔의 천민 출신 예언가 김복선

munkihu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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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스팀잇 왕보초 munkihun@munkihun입니다.  

최근에 주로 서해안 지역을 향토 답사하고 글을 올린데 이어, 오늘은 당진쪽으로 장소를 옮겨 행담도에 얽힌 이야기, 망객산과 관련한 김복선 설화 등을 중심으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목표 방향으로 가다보면, 행담도 휴게소라고 있죠?  행담도의 행(行)은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백중사리 때 갯벌의 물이 빠져 육지에서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온 것이고, 담(淡)은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다는 것에서 온 의미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전만 해도 섬 안에서 약 50여명이 살면서 통통배를 타고 육지와 왕래를 했던 작은 섬인데, 일명 토끼섬이라고도 부릅니다.

토끼섬이라고 불린  유례는, 옛날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표류하다 행담도에 이르러 마실 물을 찾아 헤매던 중,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토끼를 따라 가니 맑은 샘이 나타나 그 물을 마시게 되니 물맛이 어찌나 좋던지 금세 기운을 차리고 육지로 빠져나와 과거 길에 올라 장원 급제를 하게 됐는데, 항간에는 그 사람이 박문수라고 하며, 평생을 간직한 청렴의 신조는 자신의 생명을 살린 그 맑은 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행담도 전경- 출처 : 행담도 홍보지)

그리고 이 행담도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의 발단이 된 오페르트도굴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요한 섬입니다. 오페르트가 약 100명의 승무원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 상해를 떠나 행담도에 정박하고, 다시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 구양도를 거쳐 예산 구만포까지 올라가 정박한 다음, 덕산면 남연군묘에 도착하여, 러시아군이라 사칭하고 무장한 채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하여 5시간동안 작업했으나 너무나 견고한 나머지 날이 밝아 도굴에 실패한 사건이죠.  

이 사건으로 당시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이 개입했다고 하여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당진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수많은 신자와 순교자를 낳은 천주교 성지가 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주교 성지와 천주교 순교 순례길을 중심으로 별도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해대교를 넘어 송악ic로 빠져나가 신평에 다다르면 망객산(望客山)이 나오는데, 망객산과 관련해서는 기인 김복선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김복선은 천민출신이나 병법에 통달하고 선견지명이 뛰어난 예언가로 알려져 있는데, 세상은 김복선을 하찮게 여겼으나, 그의 학식과 숨은 재주를 알아보고 벗처럼 지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율곡 이이와 토정 이지함이었다고 합니다. 

 율곡 이이와 토정 이지함이 10년 후 임진왜란을 미리 걱정하고 그 대책을 김복선에게 묻자,  “난을 평정하는데 신평의 김복선은 석달, 전라도 김득녕은 사흘, 아산의 이순신은 7년인데, 김복선, 김득녕은 천민출신이므로, 앞으로 이순신이라는 사람이 난을 평정할 것”이라고 예언하고는 그 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율곡이 조정에 돌아와 그 대비책과 함께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면서 김복선을 쓸 것을 주장했으나, 천민 출신은 맡길 수 없다고 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김복선의 예언대로 10년 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이순신의 활약으로  7년간의 전쟁을 겪으며 난이 평정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닥칠  임진왜란을 걱정하는 율곡과 토정에게 김복선은 망객산에서 작별인사를 하며  “인신년 상사(寅申年喪事)에 왜 임진년 걱정을 하십니까” 라고 했다고 전해지며, 결국 율곡과 토정은 임진왜란 이전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왜란을 보지 못하였으니 그 죽음 또한 미리 예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

여기서  김복선이 율곡과 토정을 송별하며 이 산 바위(김복선 바위) 위에서 멀찌기 지켜봤다는 것에서 망객산이라는 이름이  유례되었다고 합니다.

(김복선 바위)

또한 김복선은 병법가로서 당진 지역에서 왜적과 맞서 교묘한 전술로 왜적의 심리를 이용하고, 온갖 유인술을 활용하여 1,2,3차 망객산 대첩을 이끌었다는 얘기도 전해져 내려 옵니다.  

한편 구전설화에 의하면 고봉 송익필, 율곡 이이, 토정 이지함, 김복선, 이순신과 특별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참고로 구봉 송익필은 도학계에서는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인데, 거북선, 학익진 전법 등을 창안했다고 하는데,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전승사와 관련해서도 이 부분을 정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실상 김복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거의 없고 설화만이 무성한 상태인데, 향토사학에서 노력해야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복선이 살전 집터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사방사업으로 현재는 사라지고 없으며, 그가 개간했다는 망객산 아래 다랭이 논은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 했었으나 현재 궁도장으로 바뀐 상태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다른 소재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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