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고무신과 까발로 그리고 담배이야기....

munkihu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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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곳곳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스팀잇 회원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스팀잇 왕초보 munkihun@munkihun입니다.

얼마전 저는 대한민국의 명사찰 답사의 일환으로 공주 마곡사에 다녀온바 있습니다. 기념품 매장에서 아기 고무신을 하나 샀죠. 검은 고무신을 살까, 하얀 고무신을 살까 고민하다가 제 어릴적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닌 기억도 있고, 딸아이에겐 하얀 고무신이 더 낫겠다 싶어 5,000원 주고 그걸로 샀습니다.


(우리딸 고무신)

요즘에는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글로벌 브랜드 메이커들이 즐비하지만, 제 어릴적 브랜드는 조양고무에서 나온 타이어표 고무신, 그리고 힘든 담배농사로 담배 팔아 어머니가 사주신 국제상사 왕자표 이티신발과 나중에 신게 된 이보다는 고급스런 태화고무공업에서 나온 까발로였죠.
특별히 까발로 운동화는 잘때 머리 맡에 두고 잤던 옛 생각을 하니 담배농사 짓던 어릴적 추억이 아련해지네요.
아시는 분을 잘 아시겠지만, 예로부터 시골에서 담배농사는 참 힘든 일이죠.

신발 얘기 하다보니 부모님 담배 농사짓던 생각에 본의 아니게 오늘은 담배 이야기까지 하게 됐네요.
저는 담배를 끊은지 약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의지로만 힘들어 금연 상담받고 국가 지원으로 챔픽스라는 금연약을 처방받아 약 3개월 정도 복용하면서 끊었습니다. 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텐데 그런걸 보면 챔픽스는 확실히 금연에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금연 생각이 있는 흡연자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복용하다 남은 금연약 챔픽스)

기왕 담배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담배의 역사에 대해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담배는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서 전래가 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애초 담배가 전래됐을 때는 약초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담배피는 방법이 나와 있고 “담배를 피우면 가래가 없어지고 기가 내리며 술이 깬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담배가 전래된 초기에는 “담배 한근의 가격이 은 한냥”정도의 가격이 너무 비싸 지배층 소수만이 즐긴 정도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확대가 되었고, 나아가 어린아이부터 칠십노인까지, 양반부터 노비까지 맞담배를 피워댔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하멜표류기에는 “현재 조선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5세때 이미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여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조선후기 흡연률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높은 흡연률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인들 사이에도 지식인들은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고 찬반과 관련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담배를 “오래 피운 자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하여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했고, 실학자 이덕무는 “세상에서 담배만큼 나쁜게 없는데 자식에게 담배를 가르치는 부모는 무식한 부모고, 부모가 피우지 말라는데 피우는 자식은 불초한 호로자식이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라고 사람들이 죄다 까막눈이고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담배의 중독성과 유해성에 대하여는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던듯 합니다.
반면 정조는 대단한 애연가로서 유명하며 , 흡연을 장려하겠다고 신하들에게 담배정책안 제출 지시까지 했다고 하니 우리 머리속에 있는 정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죠?

단지 생각의 흐름에 따라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소재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