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우 그들이 발행한 군표는 일본군의 월급으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자국 화폐인 엔화 대신에 군표를 월급으로 받고, 점령지가 많아짐에 따라서 현지 화폐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홍콩에서도 일본군은 홍콩 화폐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자신들의 군표만 유일한 화폐로 인정했습니다.
군표는 금과도 엔화로도 교환되지 않았기에 점령지의 경제는 자연스럽게 일본군의 것으로 되었습니다.
타이완의 경우 일본군에게 점령당하고 강제 군표를 사용했고, 한국은 1910년부터 군표가 강제로 유통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곳의 주민에게 강제로 빼앗은 달러와 파운드를 일본군의 군비로 충당했습니다.
일본군의 홍콩 점령기간은 3년 동안 지속됐지만,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군표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군표를 엔화로 바꿔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홍콩은 영국이 통치했지만, 영국 정부에서도 일본 군표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훗날, 가지고 있던 일본 군표를 일본 엔화로 교환받으려는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 소송에서 일본은 국가무답책의 원칙에 따라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세이난 전쟁을 일으킨 사이고 다카모리가 발행한 사이고 다카모리 군무쇼사쓰라는 군표도 있었습니다.
이 군표도 병사들에게 지급되던 월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