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보통 병원에서 태어난다.
애아빠는 보통 무슨일이든 하겠다는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그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애를 감싸고, 들어올리고, 목욕시키고 하는데에는 초보자가 할 수 없는 기술이 필요하고
애아빠는 초보자다.
햇수로 4년 전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병실에서 별로 할 일이 없이 어정쩡하게 기웃거리고만 있었다.
주변의 전문가들이 다 해줬다.
내가 그래도 애아빤데 내아들이랑 오붓하게 대면할 기회조차 없네? 하고 생각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 기회가 왔다. 다들 이런 저런 일로 병실 밖에 나간 것이다. 산모 까지도.
배운대로 조심스럽게 들어서 정면에서 얼굴을 찬찬히 마주 보았다.
나랑 똑같이 생겼다.
그전까진 갓난아기들은 개성이 전혀 없이 다 똑같이 생긴 줄 알았었다.
그런데 내 아들이 태어나던 날 부터는 신생아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을 구분하게 되었다.
살짝 뜬 눈이 잠시 마주쳤다.
신비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에 가득찼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앞의 아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이나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아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잠시후 나는 다시 아빠 생각에 빠져들었다.
기억속의 아빠가 그 때 그렇게 한 것, 살다가 내가 문득 비슷하게 하고 있음을 자꾸 발견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아빠와 나는 많이 닮았다는 것을.
키가 같고 체형도 비슷하다.
저녁먹을 때 반주를 즐기는 것도 비슷하다.
낙천적인 성격도 그렇다.
그러다 문득 느낌으로 알게 됐다.
아빠도 어쩌면 나처럼, 아빠가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냥 그렇게 확신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단명하셨고 나는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언젠가 산소에서 성묘를 드리고 잔디를 정리하고 나서 잠시 있다가, 아빠는 우리 형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살아계셨으면 니네들 저엉말 예뻐하셨을텐데... 할아버지는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셨고 아빠는 그걸 닮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
어렸을 때 어느날 나는 엄마한테, 꿈에서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스테이크를 먹어봤다는 드립을 치면서 결국 가족이 경양식 집에 외식을 하러 가게 만든 적이 있다.
(꿈을 꾼것은 사실이었다.)
경양식 집에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고, 격식있는 테이블과 포크와 나이프와 웨이터 등, 내가 기대하던 것들이 그대로 갖춰진 좋은 곳이었다.
매우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윽고 피아노 곡이 끝났는데
웬지 레스토랑 전체가 조용하고 어색했다.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일단 눈을 깔고 보는 분위기 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크게 혼자서 피아니스트에게 박수를 보내셨다.
레스토랑 안의 다른 사람들은 은근히 민망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과 같은 민망함도 느끼는 한편 웬지 자랑스러움을 느꼈었다.
아빠 또한 단명하셨고 내 아들은 내 아빠를 만나볼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게.
혹시 나중에
'저 태어나던 날 아빠는 무슨생각 하셨어요?'
라고 아들이 물어보면, 답을 해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