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의 茶이야기 4.
차가워지기 시작한 방의 냉기를 지우기 위해 군불을 지피고 있는 중에 손님을 맞게 된 나는 정 목사 일행을 개울가로 안내하여 땀을 씻게 만든 후, 함께 대청마루에 올라 앉았습니다.
“그너저나 여기서 살려면 무지 불편할낀데 어찌 사십니꺼?”
거창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는 걱정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불편함을 즐기려고 여기에 있다네.”
대답이 엉뚱했는지 모두가 껄껄 웃었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명인(文明人)들의 입장에서 내 말은 분명 허풍쯤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릿재 생활은 불편함이이야 말로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임을 깨닫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리재 왼쪽 방에 걸려있었던 현판입니다. 구소(鳩巢)란 기러기 집이란 뜻이니, 이곳에 살았던 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현판이라 하겠습니다.)'
“실은 거사님께 부탁할 일이 있어 왔십니더.”
그는 내 표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거사님이 효당(曉堂) 스님 밑에서 공부하셨다고 하던데, 맞습니꺼?”
“그런데요?”
“아! 맞는 모양이군요. 저의 가게에서 이번에 다도(茶道)강좌를 개설하려고 합니더. 오셔서 강의 좀 해 주이소.”
난 청년 시절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에 들어가 잠시 중노릇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대였던 1976년이었는데, 당시 그 절에는 불교계에서도 유명한 효당(曉堂) 최범술 스님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난 그때 행자생활을 하던 중 차(茶)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차는 내게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일상에 차를 즐겨 마셨던 스님의 뒷바라지부터 고역이었으니까요. 차를 끓이기 위한 물을 따로 길러 와야 했고, 물을 끓이는 화로까지 방 안에 있어 청소하기도 만만치 않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풀우린 맛에 불과한 차를 줄 창 마시고 있는 이유도 의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스님을 따라 차를 마셔야 했던 어느 날 문득 차가 제법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절에 손님들이 찾아 왔을 때였습니다.
"스님, 이젠 차 맛을 좀 알 것 같은데요?"
딴에는 칭찬이라도 받아 볼 요량으로 자랑삼아 했던 말이었는데, 그에 대한 응답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넌 참 천재구나. 나는 10년 만에 차 맛을 겨우 알게 되었는데.”
스님의 그 말은 함께 있었던 사람 모두를 웃게 만들어 나에게 무안을 주었고, 이때부터 난 차에 대한 인상을 구부러 트렸습니다.
10년씩이나 마셔야 차 맛을 알게 된다면 어떤 미친 놈이 차를 마실 것이냐고 말입니다. 차에 입문하는 초장부터 그렇게 삐딱해진 마당에 다도(茶道) 공부에 관심이 생겼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모릿재 누각에서 산 아래 마을쪽을 바라본 정경입니다. 이 누각에 오르면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난 효당 스님 밑에서 공부했던 것은 맞지만, 그에게 다도를 배운 적이 없어요.”
“너무 빼지 마시고, 좀 도와 주이소. 강사료도 섭섭하지 않게 드릴낍니더.”
그는 내가 몸값을 올리려고 빼는 줄 알았는지 강사료라는 미끼를 던졌습니다. 헌데 그 말이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어요.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겨울나기가 걱정되던 때였으니까요.
“몇 시간이나 해야 되는 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여섯 번만 해 주이소.”
“뭐요? 생각 좀 해봅시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상영을 해달라는 주문에 당황했기 때문이죠.
내가 더 이상을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승낙한 것으로 간주하고 즐거운 표정이 되었습니다. 난 그가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를 주제로 어떻게 12 시간씩이나 떠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사진은 모릿재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동네까지 가려면 20분 가까이 걸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