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不知堂)의 차(茶)이야기 2
도시를 떠난 내가 처음 가고자 했던 곳은 본래 다솔사였습니다. 20대 후반에 그 절에서 승려생활을 했었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서 그만 나의 여정이 구부러지고 말았지요.
“절에 가려는 이유가 뭔가?”
“조용한 곳을 찾아가 좀 쉬고 싶어서. 아는 스님도 있고.”
“요즘 조용한 절이 어디 있나? 당신이 좋아할 만한 곳이 있는데, 한번 구경해 보실려나?”
이렇게 되어 덕유산 남쪽에 위치한 어떤 문중 제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선대(降仙臺)라는 거창 북쪽 한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산길을 30분 정도 올라가자 커다란 집들이 ‘쿵!’ 하고 나타났습니다.
백세청풍루(百世淸風樓)라고 적힌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는 누각(樓閣)이 나타났습니다. 우람스럽게 서있는 그 누각은 그 집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넓은 마당이 나왔고, 잡풀들이 무릅까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빈 집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갔음을 알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난 마당 왼쪽에 두칸 짜리 쓰러져 가는 집과, 마당 정면에 높이 쌓여진 축대 위에 세워진 6칸짜리 우람한 한옥의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모리재(某里齊)’
‘어떤 마을에 있는 집’이란 뜻의 글씨가 본체 처마에 커다란 현판으로 걸려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재실로 오르는 돌계단을 밟았습니다. 오랜 풍상으로 일부가 깨져나간 채 기울어진 돌계단은 쇠락한 주변 정경과 잘 어울렸습니다.
본체에 올라가 보니 커다란 대청을 중심으로 양편에 방이 하나씩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들에는 구소(鳩巢)와 채미헌(採薇軒)이라는 현판이 각각 붙어 있었습니다. 그 글자들을 풀어보면 '기러기 둥지'와 '고사리 케서 먹는 집'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정 목사, 이집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시는가?”
갑자기 이 집을 짓고 살았던 주인공의 정체가 갑자기 굼금해졌습니다.
“조선 말기 이 동네에서 태어난 선비가 낙향하여 이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더군.”
"아무래도 이곳은 나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네."
정치적 꿈이 좌절되자 세상을 버리고 은둔해 버린 한 선비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 집이 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네 말대로 절보다는 이곳이 좋을 것 같네. 여기에 짐을 풀겠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은데..?”
친구는 막상 소개를 했지만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떠난 놈이 문명생활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짐을 싸들고 다시 모릿제로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모릿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런 날 보며 동네 사람들은 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살아보려고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하산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이 모릿제는 궁합이 맞았는지 한동안을 여기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이 사진은 모릿재를 떠났다가 다시 방문하여 찍은것인데, 수리를 해 놓아 옛정취가 많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릿제에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날 모리거사(某里居士)라고 불렀는데,
이곳에서 차(茶)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본명보다 별명이 더 유명해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모릿제 생활은 차인(茶人)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차(茶) 이야기도 모릿재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