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마녀, 철녀 루이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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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의 마녀, 철녀 루이나이웨이


루이나이웨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바둑 근대역사에 포스팅 중 그녀를 소개할까요?

이전에 포스팅을 이야기 했듯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 (https://steemit.com/kr/@mooyeobpark/5ym9nb)

바둑 붐이 일어나고 새로운 10대 여류 프로들이 조금씩 나왔지만 프로기사 숫자가 10명도 안되었고 다른 나라와의 실력 차이도 컸으며, 여성의 대회 또한 없었기 때문에 등잔 밑에 그늘이었습니다.
그때 루이나이웨이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녀는 1999년부터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 여자기사들의 실력을 평균적으로 상향시켰습니다.
우리나라의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등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일인자가 우리나라의 바둑계를 끌어올렸듯이 루이나이웨이 또한 단신으로 한국 여성바둑을 세계적인 위치까지 끌어올려줍니다.

중국 바둑과 당시 최강이었던 일본 여성바둑 또한 잘 알고 있어서 한국 여류기사들이 자신감을 갖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일본 여성 기사를 상대로 수년간 비공식 대국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국 데뷔 후에도 공식 대국 39전 중 33승 6패로 85%를 달성해냅니다.

1993년 최초의 여성 기전부터 출전한 36차례 국내외 여성기전에서는 29회를 우승하여 승률 80%의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고 국내기 전에서도 25번 중 19번의 우승으로 승률이 아닌 우승률이 76%였습니다.

그녀는 무려 30년간 여자기사 랭킹1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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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이웨이 그녀의 굴곡진 인생사


루이나이웨이는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습니다.
1975년 11살에 바둑을 시작하여 1985년에 중국기원의 프로기사가 되었고 1988년에는 여자로서 세계 최초 9단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이런 그녀를 중국기원에서는 불편하게 생각했나요? 중국 바둑계의 남녀차별과 일인자였던 녜웨이핑과의 문제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고 또한 1989년 천안문 6.4 항쟁에 그녀의 연인이었던 장주주 9단이 베이징에서 피켓시위를 참가하게 되어 장주주와 루이나이웨이 모두에게 체포령이 떨어져서 중국 바둑과는 그렇게 이별하게 됩니다.

그 둘은 베이징에서 홍콩, 대만, 일본 등을 거치며 미국으로.. 머나먼 떠돌기 생활을 하게 됩니다.

90년에는 장주주는 미국으로 그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는데, 일본기원 또한 루이나이웨이의 실력이 너무 강해 여자바둑을 석권한다는 걱정과,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회조차 참석이 어려워집니다.
수배자인 루이나이웨이는 일본에서 바둑 지망생을 교육하면서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영원한 기성 오청원 선생님께서 루이나이웨이를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들여 바둑을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해주지만 루이나이웨이는 끝까지 일본에서 정식 기사 활동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청원이야기 (https://steemit.com/kr/@mooyeobpark/76uxhh)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거부당한 그녀는 절망한 채 그의 연인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그 미국에서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 를 만나게 됩니다.

차민수 프로 이야기 - https://steemit.com/kr/@mooyeobpark/5xep3k

차민수 5단은 바둑을 루이나이웨이와 장주주 9 단부부를 한국기원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열심히 지원해주고 조훈현 9단과 상의하여 한국기원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지요
중국과 일본이 버린 천재기사 루이나이웨이는 드디어 떠돌이 생활 10년 만에
본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 한국기원에 안착하게 됩니다.
(쓰다가 울컥울컥 하네요..)

당시 한국기사들은 루이나이웨이가 온다는 소식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였고 (윤영선과 박지은 프로 등) 그 이후 우리나라 여성들의 바둑은 세계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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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단 루이나이웨이의 활약


1993년 제2회 응씨배 대회에서 대회주최자 잉창치가 출전을 허용하면서 중국측 기사들이 전원불참하는등 또 한번 정치에 희생양으로 떠올랐지만 루이나이웨이9단이 이창호를 꺾으면서 세계바둑에 충격을 안겼고
그녀는 4강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00년 국수전에서 여자기사로서는 최초로 타이틀을 따내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녀의 상대로는 이창호 9단을 누르고 그다음 상대인 조훈현 9단을 연파해서 타이틀을 따냅니다.
세계 최강의 한국바둑 국가이고 그중에서도 으뜸인 조훈현과 이창호를 누르고 가장 권위 있는 타이틀을 여성 루이나이웨이가 석권한 것이지요.

2003년에는 남편 장주주와 맥심 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전에 만나서 대국을 한 세계바둑을 통틀어 또 한 번 최초의 부부 결승전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고

2004년에는 맥심배 입신최강전에서 최강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을 상대로 우승하면서 또 한 번 여성 기사가 남성 기사를 꺾고 우승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 외의 수상이력은 너무 많기도 하고 퍼오기도 그래서, 검색을 추천 드립...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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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바둑기사


“아무리 지옥 같은 곳이라도 바둑을 둘 수 있으면 내게는 천국이고, 아무리 천국 같은 곳이라도 바둑을 둘 수 없으면 내게는 지옥”

- 부부의 자서전 우리 집은 어디인가?


그녀는 10년여의 도피생활 끝에 한국기원에서 화려한 꿈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미 그 나이에 30대 후반으로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2004년도에는 나이가 42세임에도 계속 타이틀을 획득하니 정말 약간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루이 나이가 최전성기를 누려야 했을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제대로 바둑을 두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정치문제와 압도적인 능력으로 인한 견제로 희생된 루이나이웨이가 참 안타깝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감성적이고 이성적 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것 같아요. 두뇌가 다른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여자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또 여자 스스로 남자한테는 안 된다는 자격지심도 있고요.”

여자는 바둑을 못 두나요?(https://steemit.com/kr/@mooyeobpark/4vwn2h)
이전 포스팅에서 제가 감히 확정적으로 답을 적지 못하였는데 그녀의 대답이 여러분들의 생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바둑의 역사 중에 가장 강한 남자기사는 누구인가요?
조훈현? 이창호? 오청원?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강한 여자 바둑기사는 대답이 쉽습니다.

그녀는 철녀 루이 나이웨이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대국은 아직도 진행중 입니다.

스팀, 스달 가격이 다시끔 하강하고 있네요.. 마음만은 업되시기를 바라면서
즐거운 금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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