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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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는 누구?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는 누구일까요?
여자는 바둑을 못두나요? (https://steemit.com/kr/@mooyeobpark/4vwn2h ) 포스팅에 이은 2탄입니다.
조남철 선생님이 한성 기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입단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녀에 따른 입단 규정이 없이 동등하게 선발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여성 프로기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3~4명씩은 신청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였지만 결과는 언제나 남성 프로들에게 갔지요.

이후 명칭이 대한기원으로 바뀌고 나서 세계적 추세에 따라 별도의 여자 입단대회를 열게 됩니다.
1회 여성프로 입단대회로 탄생한 프로기사가 조영숙, 윤희율 프로입니다.

조영숙 프로

조영숙은 아마추어 5단인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괄량이인 딸에게 차분함을 알려주기 위해서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그녀의 성격인지 바둑 또한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으로 승승장구하였고 꾸준하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녀의 결혼 또한 한국기원에 다니면서 바둑을 공부하다가 바둑을 배우러 온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고교생 때부터 여러 차례 입단대회에 도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성인이 되어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계속 바둑공부를 하다가 1975년 28살에 신혼주부로써 여자 프로 입단제도에 의하여 첫 여성 프로가 되는 영광을 이루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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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율 프로
1996년 한 여고생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일본 동경에서 열린 한일 친선대회에서 최초로 여성 해외 대국을 벌였습니다. 일본아마선수권대회에서 우승까지 하였으며, 일본기원 특별상, 신문사 바둑상등까지 받은 것이지요.

1967년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여성바둑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이후 일본에서 쇼와약학대학에 입학합니다. 학업을 닦으면서도 바둑공부를 꾸준히 하였고 여류 본인방전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1975년 조영숙 프로와 함께 한국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프로기사가 된 후에 다시 일본으로 떠나고 약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약사고시 합격 후 약국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1회 여성프로기사의 탄생 그 이후

둘 다 최초의 여성 프로가 되었지만 꾸준한 프로 활동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인 여성 프로의 탄생은 한국 여성 바둑계가 성장하는 동력원이 될 거라 생각되었지만 두 명을 선발한 후에 약 15년간 단 한 명의 여성 프로기사를 선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성 프로 바둑계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으며 여성에 대한 편견, 여건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발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요

하지만 70년대부터 바둑 열풍이 서서히 불면서 어린이 바둑교실이 생겨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여자 어린이 수강생이 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한국 여성바둑연맹에 전신인 한국 여성 기우회가 74년에 출범하며 단숨에 1,000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며 좋은 출발을 보여주었고, 여대생 바둑클럽인 이화여대, 성신여대, 한양여대 등에 바둑동아리들을 통해 조금씩 바둑이 보급되면서 15년에 여성 프로 공백기를 아마추어 기사들이 메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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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곳이 권갑룡도장입니다. 당시 여성에게 바둑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도 없었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부족한 과정에서 권갑룡 사범은 두 딸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또래 여자아이들을 지도하게 되고 훌룡하게 키워냅니다. 그리고 그의 지도 속에 윤영성, 김민희, 하호정, 강승희 등 새로운 인물들을 키워내면서 여성바둑발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여성바둑계의 발전의 시작

여성 기우회와 학원교육으로 여성 바둑이 점차 성장함에 따라 여성들도 프로가 될 기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고 다시금 프로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1990년대가 돼서야 남치형, 이영신, 신윤영, 하호정, 윤영선 등이 2년간 배출되어 다시 여성바둑발전에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특히 1992년에 초등학교 6학년 하호정과 세화여중 3학년 윤영선이 바둑계의 주목을 받으며 발판을 마련합니다. 12세의 하호정은 제4기 쌍용증권 배에 중년 여성 기사들을 물리치고 우승하여 한국 여성 바둑계의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고 각종 언론에 주목을 받으며 꿈과 희망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여성 프로기사는 불과 10명도 안되었고 중국의 여성 프로기사와의 격차도 워낙 컸습니다. 실력이 부족하니 관심도 적어지고 여성기전 또한 턱없이 부족하였으니 계속된 악순환에 시달려오게 되지요

철녀 루이나이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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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혜성과 같이 등장한 사람이 바로 루이 나이웨이입니다.
그녀는 누구인가?

철녀 루이 나이웨이 9단의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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