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의창시자 명인 十三단 혼인보 도사쿠

mooyeobpark(58)
Published in
#kr
Words
594
Reading
3 min
Listen
Play
8y

박원장.png

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도사쿠의 기가17수(棋歌十七首)

  1. 초심(初心)으로 살피고 한수마다 사방을 보면서 두텁게 두어라.>
  2. 선번(先番)이면 대세점을 취하고 두점이면 상대를 분단하라. >
  3. 넉점이면 중앙에 세력을 쌓고 전후차제(前後次第)를 살피면서 두어라. >
  4.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가는 나쁘니 세번을 살펴보고 두도록 하라. >
  5. 돌을 함부로 따는 것은 하수(下手)의 소치니 돌을 따는 것도 아껴라. >
  6. 위태로운 말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중앙으로 진출하라.>
  7. 내말이 강하면 상대의 돌을 먼저 끊어두고 보라. >
  8. 상대의 대모양을 너무 깊게 파고 들지 마라. >
  9. 잘 모르겠으면 가볍게 버리고 두어라. >
  10. 패를 유리하게 만들려면 먼저 눈을 빼앗고 보라.
  11. 패싸움에 강해지려면 노림을 함부로 없애지 마라.
  12. 눈이 없어도 삼패(三劫)는 빅이니 잡을 생각을 마라.
  13. 한번보고 급히 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니 부디 신중하라.
  14. 상수(上手)는 꼿꼿이 뻗어두고 하수(下手)는 비켜서 도망간다.
  15. 젖힘의 타이밍을 놓치면 수(手數)가 길어지는 모양으로 간다.
  16. 목산(目算)을 자주하고 어떤 전략으로 둘 것인지 결정하라.
  17. 남의 바둑에 쓸데없이 훈수하지 마라.​

1600년대 명인 혼인보 도사쿠가 알려주는 바둑을 잘 두는 비법입니다.
지금 봐도 많은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가득하네요

캡처.PNG

포석의 창시자 혼인보도사쿠(1645 ~1702년)

오늘은 도사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645년에 일본에 혼슈 시마네현에서 출성 한 그의 조부는 무장이었는데 야마자키 마을로 은퇴하면서 살게 됩니다. 도사쿠는 그의 둘째 손자였으며 무장출신인 그의 가문에서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일본이 통합되면서 평화로운 삶의 시대이며 바둑을 장려하던 시기였답니다.
조부에게 바둑을 배운 도사쿠는 에도로 나와 혼인보 가문에 입문하게 됩니다.
압도적인 바둑을 두던 혼인보 가문이었지만 당시의 혼인보 가문은 다른 가문에 밀려서 하락세를 달리고 있었으나, 도사쿠의 존재로 혼인보 가문이 다시 한번 부활하게 됩니다.
나이 23살에 ‘어전 시합’에 참여해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하며 1670년 그의 스승 혼인보 3세 도에쓰가 은퇴할 때 도사쿠는 고도코로가 됩니다.
(고도코로는 지금의 한국기원총재 + 압도적인 권력에 해당되는 바둑의왕입니다.)
고도로코가 되기 위한 자격심사에서 그는 단에 따른 승률을 이야기하는데,
당시의 기력 체계는 상대와의 승수에 따라 접바둑으로 진행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단으로 따지면 상대가 7~8단 상대여도 도사쿠는 13단에 해당되는 실력이라서 13단으로 불립니다.
압도적인 단수인 그는 혼인보 4대이자 고도로코로 취임하게 되며 바둑의 세계를 크게 확장시키게 됩니다.

바둑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혼인보 도사쿠가 혼인보4대이자 고도로코로 취임하면서
밖으로는 4대 가문의 제도를 더욱 확립시키고 질서를 잡기 위한 단에 대한 규칙을 제정하고 아마추어에게 단을 주는 면장(免狀) 발행을 하게 됩니다.
아마추어에게 단을 주는 면장을 시행하려면 바둑자체가 일반사람들에게 보급이 잘 되어있어야했으며 면장을 시행했다는 내용은 바둑보급활동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빛나는 업적은 바둑판 자체에 있습니다.
그것은 19줄 바둑판의 확립 및 수 나누기 이론을 세운 점입니다.
그가 3대 혼인보의 제자로 있을 당시에는 17줄 바둑과 19줄 바둑이 혼용되던 시점이었는데 19줄 바둑판이 점점 유행을 타게 되었고 19줄 바둑판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여 혼인보 3대 도에쓰에게 대국 중간 훈수를 하여 승리를 안겨줍니다.

그가 세웠던 전법은 현대의 중국식 포석의 개념으로 귀와 변을 동시에 선점하여 상대가 집에 쳐들어올 때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법입니다.
즉, 포석의 개념을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당시 전투만 하는 중국의 바둑 스타일과 집 짓는 것만 선호하던 일본의 바둑을 하나로 묶어
일명 ‘도사쿠류’라는 스타일의 포진 법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특히 당시의 17줄과 19줄 바둑 모두 바둑판 부분에서 주로 전투가 일어나고 끝나면 다른 곳에 전투를 하는 식의 대국이었습니다.
(즉 줄 수와 상관없이 열심히 싸우면 되는 바둑이지요.)

도사쿠는 바둑판의 전체를 보는 개념으로 19줄 바둑판에 포석 이론을 확립하였고 부분에 치우친 바둑을 전체를 이해하고 부분을 생각하는 수 나누기 개념의 원리를 도입하게 됩니다.
그의 혁신적인 수법은 전투 중심의 바둑에서 전국의 조화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근대 바둑의 포석에 대한 기틀을 만들고 그에 따른 변화가 200여 년간 중국 바둑을 3점 치수 차이가 나도록 앞서게 된 계기가 되지요

바둑은 뛰어난 천재 하나로 인하여 패러다임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1600년대의 도사쿠는 당시에 없던 ‘포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4월을 맞이하여 학원지도검사가 예정되어있답니다.
음..회사면 검열?같은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휴..앞으로 검사준비 때문에 더욱 바빠질것 같네요 ㅠㅠ
그래도 틈나는대로 글을 적어서 찾아뵐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문.jpg

포석의창시자 명인 十三단 혼인보 도사쿠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