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합니다.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절망적 상황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때 것 살아오면서 위기가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적으로 항상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위기는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적 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얻은 유익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열악한 환경이나 위기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흙수저니 은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수저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물려 받은 것이 없는 자체가 진짜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극단적인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망해선 안 됩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진짜 기회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지혜로운 스승 밑에 젊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일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렸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그 제자를 불러 소금을 한 줌 가져오라고 일렀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가져온 소금을 물 컵에 넣고선 그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그 물을 마셨습니다. 제자가 물을 다 마시자 스승이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제자가 조금은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짭니다.”
스승은 다시 소금 한 줌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소금을 쥔 제자의 손을 호수에 넣고 휘휘 저었습니다. 잠시 뒤 호수의 물을 한 컵 떠서 제자에게 마시게 한 후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제자가 당연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예, 짜지도 않고 시원합니다.” 스승은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소금을 넣었는데 짜지 않단 말이냐?” 제자가 다시 대답합니다.“아니요. 전혀 짠 맛이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네. 짠맛의 정도가 소금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듯 고통도 마찬가지라네. 자네가 고통 속에 있다면 작은 컵이 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 호수가 되게나.”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습니다. 고난은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고통을 대하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통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죽을만치 무거울 수가 있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새가 자기에게 날개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날개를 쓰지 못하고 맨날 걸어다닙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늑대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가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다 보니 날개가 펴졌습니다.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뒤쫓아 오던 늑대가 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봅니다..이 새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떨어질 때 가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법을 배우려고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해보는건 어떨까요? (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