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알기 전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차마고도'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높고 험준한 길을 따라 어떻게 차와 말을 교역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또 그것을 실현했었는지
그들의 여정에 대단한 경외심이 들었다.
차마고도와 함께 인류 최초의 교역료로 꼽히는 비단길 즉 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의 총칭이다. 총길이 6,400㎞에 달하는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독일인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 1905)이 처음 사용했다. 중국 중원(中原) 지방에서 시작하여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Taklamakan Desert)의 남북 가장자리를 따라 파미르(Pamir)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길이다.
물론 세 이야기 모두 고대 문헌 속 작은 소재들에서 가져온 이야기지만 특히나 세번째, 감보와 알지 이야기는 왠지 역사 속 상상이아닌 진실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묘한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 기록 속 감보의 이야기를 조금 찾아보았다.
동양과 서양은 BC 100년까지도 서로 간에 교류가 없었다. 이러한 교류를 가로막고 있었떤 가장 큰 이유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과 같은 자연 장애물과 이슬람인들의 방해 때문이다.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前漢: BC 206~AD 25) 때이다. 한 무제(武帝)는 대월지(大月氏), 오손(鳥孫)과 같은 나라와 연합하여 중국 북방 변경 지대를 위협하고 있던 흉노를 제압하고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길 원했다. BC 139년 장건(張騫)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장안을 떠났지만 얼마 가지 못해 흉노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는 그곳에서 약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통역인 깐후(甘父)와 탈출하여 파미르 고원 너머에 있는 페르가나(Fergana)국을 거쳐 당초 목적지인 대월지국(大月支國)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흘러 대월지국은 동맹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대월지국에 머무는 1년 동안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장건이 서역으로 갈 때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길을 이용했지만 돌아 올 때는 그 남쪽 길을 택했다. 도중에 티베트족에게 붙잡혀 1년 동안 고생하기도 했지만 BC 126년에 돌아왔다. 대월지국과 동맹을 맺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의 경험과 자료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한 무제는 치하 했다고 한다
한 무제는 장건의 귀국 보고를 아주 흥미롭게 생각하였다. 서역에는 명마가 있고, 금은전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고, 중국(한)의 특산품인 칠기와 비단을 사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월지, 강거, 오손 등 군사력이 강한 유목 민족들을 흡수해서 한나라를 세계의 강국으로 끌어 올리고 싶어 했다. 당시 중국과 서역 사이에 낀 간쑤성(甘肅省)은 흉노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장건은 그들을 피해 쓰촨성(四川省), 윈난성(雲南省)을 거쳐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그래서 부하들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모두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장건은 흉노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오손을 이주시키려고 직접 부하 300명을 이끌고 오손(wuson)으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나라로 돌아 온 장건은 이듬해인 BC 114년에 죽고 말았다.
한 무제는 BC 104년부터 101년까지 페르가나국에 군사를 보내어 왕의 목을 치고, 남북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에 자리한 누란(樓蘭)도 정복하였다. 마침내 BC 60년에는 흉노마저 굴복시킴으로서 서역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의 비단은 본격적으로 로마까지 팔려 나갔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기린, 사자와 같은 진귀한 동물과 호마(胡馬: 말), 호두, 후추, 호마(胡麻: 깨) 등이 전해졌고, 유리 만드는 기술도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비단, 칠기, 도자기같은 물품과 양잠, 화약 기술, 제지 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는데, 특히 종이 만드는 기술이 서역으로 건너가서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밝혀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둔황(敦煌)을 비롯한 4군데에 요새를 세워 장사 길을 보호했는데, 이때부터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가 훤히 뚫렸으며 1년에 5~10번씩 장사꾼들이 오갔다.
장건이 서역을 처음 개척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빈번히 교류하였다. 그러므로 실크로드는 상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서 문화의 교류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많은 스님들이 경전을 구하러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들어갔고, 인도의 승려들도 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많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중국 불교가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인도와 중국을 연결시켜준 실크로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실크로드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당대(唐代: 618~907)였는데, 현재는 파키스탄과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吳爾自治區)를 잇는 포장도로에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을 읽고 한번 더 감보와 알지를 읽으니 배경들이 눈에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지고
이야기 속 인물들을 나만의 나만의 이미지로 만들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참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우리의 신라도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