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저의 글들을 읽어내려가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했었구나 싶어 그날의 글을
여기에 옮겨와봅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출판사 창비
현덕 소설집/원종찬 엮음
2014.4.23
무슨 연유에서 아버지는 나비를 쫓아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그 똑똑치 못한 걸음으로 밭두렁을 지척지척 돌고 있을까요
아,, 지난 일주일 동안 저는 나비를 잡는 수백명의 어버이를 보았습니다.
저는 가장 슬프고 잔인한 나비효과의 실체를 여실히 보고 말았습니다.
하나의 작은 염원으로 시작하여 온 국민이 큰 기적을 바라는 희망을 뒤로 한 채 근거 없는 개개인의 말들은 가담항설이 되어 다수의 공유거리로 진실은 왜곡되고 은폐되어 이제는 불신지옥 대한민국을 방불케 할 정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 부모, 자식, 형제를 잃어버린 채 망망대해를 향해 눈물조차 말라버린 유가족들의 심정에 어떻게 견주겠소만은, 이 끔찍한 사고 앞에서 생존자의 구조를 기도했지만 이제는 애도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현덕의 청소년 소설집으로 다수의 단편소설을 실었습니다.
총 12편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인간의 삶이란 그저 무한반복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1930년대 삶을 산 10대 청소년들이 자주 부딪치는 문제- 양심, 우정, 오해, 의심, 어려운 집안형편과 진로고민-는 오늘을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의 일기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1930년의 그 훨씬 전에도 앞으로 먼 미래에도 직면하게 되는 갈등은 여전할 것입니다.
책의 뒷표지 해설을 인용해 볼 때 다행이도 이 책에 나오는 문제와 갈등은 올바른 관점에서 감동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갈등 야기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되가고 있는가요?
사회 계층 구조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학교에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여실히 노출되어 동기간에 위화감을 부추기고,앞선 문화, 제도를 배워야 할 교육현장은 10년도 훨씬 전인 퇴출 문화와 제도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경쟁으로 우위를 정하고, 신분을 정해 남을 배척하고 지배하려고 드니 삭막한 정서에 내몰린 10대 청소년들은 범죄에도 쉽게 노출되어 학교폭력, 폐륜, 청소년 성범죄등 사회문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시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돌아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만, 저는 아직까지도 꿈이 있다면 거뜬하다고 믿습니다.
바우의 어버이는 내 잘못이 아니고 내 자식의 잘못이 아님에도 잘못을 빌어야 하는 설움을 강요했을 지언정, 바우가 주어진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날아 오를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노력없이 운 좋게 달게된 경환이의 힘없는 날개와는 견줄 수 없는 튼튼한 날개를 분명 제 스스로 달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줄거리>
바우는 표본 숙제를 한답시고 나비를 쫓으러 다니는 경환이가 아니꼬아 시비를 겁니다.
"이 동네에서 나 하는 거 시비 할 사람 없어. 건방지게 왜 이래?"
빈정거리며 코를 씩씩 불던 경환이는 나비를 잡는 척 바우네 밭에 들어가 바우네 참외를 다 밟아버립니다.
"땅은 너이 집 거라두 참이 넝쿨은 우리 집 거 아니냐. 누가 너이 집 땅을 밟는데서 말야. 우리 집 참이 결단 내니가 말이지."
바우는 보다 못해 경환이와 주먹다짐을 합니다.
이우 바우 엄마가 경환이네에 불러가고 엄마는
"어서 나비 잡아 가지고 가서 빌어라 빌어."
하며 나비를 잡아와 빌지 않으면 내년엔 땅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경환이네의 말을 전합니다.
바우는 슬픈 눈초리를 흘리며 뒷산으로 올랐습니다.
집에서보다 갑절 어버이에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사무칩니다.
그러다 저 아래 누가 나비를 잡고 있는 모습니 보입니다.
'흥, 경환이 저 놈이 또 나비를 잡는구나.'
'흥, 경환이란 놈이 저의 집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구나.'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바우 아버지입니다.
바우는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는 마음을 가슴 가득히 참으며 언덕 아래 메빌밭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