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미스티
전 날까지 사마르칸트 투어가 끝나서 이 날은 고속철을 타고 부하라로 이동해야 했다.
고속철을 타고 1시간 40분쯤 후에 부하라에 도착했는데 부하라 역시 사마르칸트와 비슷해서 한낮의 기온은 살인적이라 할 만큼 뜨거워 부랴부랴 버스로 옮겨 타고 가장 먼저 쉬토라이 모히하사(Sitora-i Mokhi khosa)를 향했다.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2,500년의 도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서역과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오아시스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에는 1,000 년 이상 오래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고 하는데 이동하며 본 풍경은 조용하고 깔끔했다.
단지 뜨거운 햇살이 걱정을 더할 뿐...
부하라행 고속철을 탔던 사마르칸트 역.
기차 밖 풍경, 그리고 장난을 걸어오던 아기.
부하라 역.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많은 차들
이동하며 본 풍경. 시장이라 들었던 듯.
쉬토라이 모히하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공사 중이어서 길이 편하지 않았다.
궁전이라기엔 조금은 소박한 정문을 지나자 입구에 있는 가게의 상인들의 호객이 반기고 뜰에는 공작새 몇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달과 별의 궁전, 쉬토라이 모히하사는 마지막 부하라의 왕 에미르 사이드 미르알람의 여름궁전으로 1910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며 첫인상은 하얀색 궁전에서 왠지 유럽 느낌이 풍겼는데 러시아 건축가들과 현지 건축가들이 함께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궁전을 짓기 전에 왕은 궁전을 지을 곳을 결정하기 전에 동서남북 네 지역에 양을 풀어 놓아 양이 가장 살찐 이곳에 궁전을 짓게 했다고 한다.
이 궁전은 현재는 박물관이며,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실내에 들어서면 왕의 접견실이며 부하라 양식의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화려하고 값비싸 보이는 집기와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당시 화려하고 사치스런 왕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쉬토라이 모히하사 정문
정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 상점이 있고 뜰에는 공작새가~.
궁전 옆에 있는 건축가의 동상. 이 궁전의 건축에 참여했던 것으로 짐작.
부하라 왕조의 마지막 칸(왕)인 에미르 사이드 미르알람이 1920년 소련에 쫓겨 아프가니스탄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접견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정 장식
도자기 전시실
작은 도자기는 따로~.
왕이 기거했던 궁전을 나와 또 다른 박물관에 들러서 왕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짐작게 하는 전시물을 보고 궁전의 뒤편에 있는 후궁들의 처소였다는 건물로 갔다.
후궁들의 처소 역시 박물관이었는데 왕의 부름을 기다리며 카펫을 짜고 수를 놓던 후궁들의 삶의 애환이 느껴진 곳이었다.
왕이 기거하던 궁전과 후궁들의 처소 사이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과거에는 이 연못에서 후궁들이 목욕하는 것을 보던 왕이 사과를 던져 그날 밤을 함께 보낼 후궁을 골랐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다.
박물관을 나오며 이곳을 짓게 한 부하라 왕국의 마지막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소련 군대에 쫓겨 도망을 가면서 화물열차에 금을 실어 가져갔다고 한다.
남아 있던 금의 양이 화물열차 2칸을 꽉 채우는 양이었으며 실재했던 금의 양의 1/10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왕은 가져간 금으로 마지막까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쉬토라이 모히하사에 있는 또 다른 박물관
당시의 옷과 신발, 모자 등...
도자기 전시실에서 창문 밖으로 보였던 후궁들 처소
후궁들의 처소였던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
후궁들 처소 맞은편에 있는 건물
후궁들은 이런 카페트나 담요를 짜면서 왕의 부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벽의 일부를 장식하고 있던 아름다운 타일
쉬토라이 모히하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그늘에 노점을 차려놓고 액세서리와 그림을 파는 노점상들이 볼 수 있었는데 가는 붓에 물감을 묻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그림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작품 사와도 좋았을 걸 싶다.
쉬토라이 모히하사 안 노점상이 팔고 있는 액세서리들
솜씨 좋은 길거리 화가와 그의 작품
여행지 정보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시토라이 모히호사 여름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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