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미스티
구르 에미르를 나와 울르그벡 천문대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잘생긴 울르그벡의 동상이 우릴 맞아주었다.
동상의 왼쪽으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오르니 왼쪽으로는 울르그벡 박물관이 오른쪽으로는 천문대가 보였다.
사실 천문대는 현재 천문대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 듯 보였고 단지 울르그벡 당시의 천문대였던 자리를 일부 복원해 놓은 것 같았다.
이 천문대는 축구를 하다가 공을 찾으러 온 소년이 처음 발견했다고 하며 그 맞은편에 울르그벡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소규모 박물관이 있었다.
천문학자로서 울르그벡(Ulughbek, 1394년~1449년)의 업적을 추측하게 하는 시설이 아닐까 싶다.
울르그벡 천문대 맞은편에 있는 소규모 박물관
울르그벡 천문대. 사실 천문대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으며 울르그벡 당시의 천문대가 있었던 터를 일부 발굴, 복원해 놓은 곳이다.
천문대 내부에는 이것 뿐이다. 울르그벡 당시의 천문대 일부이다.
천문대와 박물관을 한 컷에 담은 사진. 구글지도에서 가져 옴.
전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중국을 통해 울르그벡의 천문학 자료가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세종대왕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으로 과학자들을 파견해서 중국을 통해 울르그벡의 천문학 저서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1년의 정확한 길이에 관한 연구였는데 여러 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나 현재 알려진 1년의 길이게 가장 근사치를 측정한 사람이 울르그벡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외에도 울르그벡은 우수한 학자들과의 연구를 통해 망원경이 없던 그 시절에 1,000 개가 넘는 별자리를 찾아내어 별자리표(Zidji Jadidi Guragoni/새 별의 지도)를 만들어냈다고 하니 천문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위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천문학과 수학, 과학 등 학문적으로 위대한 결실을 맺은 반면, 학문에 몰두하는 그의 성향을 종교계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왕좌를 빼앗고자 하는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목이 베여 살해되고 말았다고 한다.
티무르의 죽음으로 왕이 된 샤흐 루의 아들로 15세 때부터 40년 동안 사마르칸트를 지배하며 그 아버지와 함께 티무르 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울르그벡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천문대 맞은 편의 박물관 입구에 있는 울르그벡의 초상.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내용인 듯.
실크로드의 중심에 있는 사마르칸트를 나타낸 지도
티무르 박물관에서도 보았던 그림. 사마르칸트에서 열렸던 실크로드 대상들이 모인 시장을 그린 그림으로 상투를 튼 고려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5 세기 아미르 테무르 (Amir Temur)에 의해 가장 번영했던 시기의 티무르 제국을 나타낸 지도로 당시 티무르 제국은 중앙 집중적이고 강력한 국가였다고 한다.
당시의 천문대를 복원해놓은 모형
당시 천문대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을 그린 그림.
천문대의 단면 모형.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Prodromus Astronomiaye»(천문학 뉴스)의 작품에 새겨진 조각. 울르그벡(Mirzo Ulug Begh)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유럽의 다섯 천문학자와 함께 새겨져 있으며 천문학 Urania의 뮤즈 (God)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 천문학자로서의 울르그벡의 업적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다.
위 사진에서 가이드가 가리키고 있는 부분을 확대한 사진의 내용이 아래 사진.
세종대왕이 천문 과학자들을 중국으로 보내 한문으로 된 울르그백 저서들을 가져오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울르그벡의 연구와 업적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르그벡이 측정한 1년의 길이가 현재의 1년의 길이와 가장 근사값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표
울르그벡이 측정한 각 행성들의 공전주기가 실제와 근사값임을 알려주는 표.
아미르 티무르 왕 당시에 주조되었던 동전들.
전시된 코란
여행지 정보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Observatory of Ulugbek Samarkand, Tashkent Road,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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