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미스티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바사 전함 박물관으로 이동하며, 가이드로부터 바사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스웨덴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사 왕조의 2대 왕, 구스타프 아돌프 2세는 발트해의 제해권을 두고 독일 페르디난트 2세 황제와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어서 발트해를 완전히 스웨덴의 손 안에 넣고자 강력한 해군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바사호는 그 전함 중의 하나였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든 전함이 바사호(길이 69 m, 높이 48.8 m, 탑승 가능인원은 선원 145명과 병력 300명 총 445명에 동시에 300kg 이상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닌 당대 최대의 전함이었다.)였는데 1628년 8월 10일 스웨덴의 국왕과 왕비, 대신들과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궁 아래 선창에서 진수식을 마치고 폴란드로 첫 출항을 나서기 전에 출항기념 포를 한방 쏘다가 그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울어져 허망하게끔 그대로 가라앉았다.
승선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대로 수장되었고 333년간을 바닷물 속에 있다가 1961년 인양 되었는데 놀랍게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다.
스웨덴의 해양고고학자 안더스 프란젠(Anders Franzen)이 인양에 성공하고 스웨덴 정부가 20년에 걸쳐 복원 작업을 실시하여 14,000개의 목조품과 700개의 조각상을 일일이 방부처리하고 배의 부품을 하나하나 다시 조립해 바사를 거의 원형대로 복원해서 전시하게 되었는데 95% 정도 완료된 것이라 한다.
바사 박물관
갖고 있는 사진의 화질이 너무 떨어져 이해를 돕기 위해 픽사베이에서 가져온 바사호사진.
뱃머리에 장식된 사자상이 인상적이다.
바사호 모형.
1962년 임시 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보존처리를 한 바사호는 1988년에 강물을 이용해 그대로 이송하여 위로 올리고 강은 덮개를 씌워 배를 기본으로 둔 후, 박물관 건물을 지었는데 인양 시 수집한 2만 4000점에 달하는 유물이 함께 전시돼 있다.
바사호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발트해의 염분이 적어서 목재를 부식시키는 박테리아가 살지 못하였고 또 부드러운 뻘이 배를 보호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배 자체가 단단한 참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이 바사를 원형대로 유지해 주던 가장 큰 이유라고도 한다.
내부 2층에 들어가니 선원실, 장교실, 선장실 등에 인체의 2/3정도 목각으로 된 실제 생활모습을 하는 인형들을 배치해서 당시 선상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렇게 완성되기를 원했던 전함이 제대로 바다에 떠보지도 못한 채 수장되고 있을 때 구스타프 2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바사호가 맥없이 바다에 가라앉은 원인은 바사호를 건조建造하는 과정에서 구스타프 2세의 무리한 간섭과 설계변경 요구로 쉽게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한다.
구글 지도에서 찾은 바사 박물관
- 이 포스팅은 2007년 여름에 친구들, 남편과 함께 했던 북유럽여행을 회상하며 올리고 있습니다. 이 번 포스팅에도 사진 화질이 나쁜 점 이해를 구합니다.
여행지 정보
● 스웨덴 스톡홀름
● Vasa Museum, Galärvarvsvägen, 스톡홀름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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