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이 순식간에 흘러 벌써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하나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방향의 삶에서는 유럽에서 몇 달씩 살 일이 이젠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두 번 다시 없을 경험의 마침표를 나는 이제 찍어야만 한다.
지쳤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모두가 바쁘니 나도 바빠야 할 것 같았고 그렇게 살았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답답함이 심해졌고 결국 다음 학기는 도저히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순전히 쉬기 위해서.
날씨가 좋은 가을 어느 날, 처음 프라하에 발을 디뎠다. 설렜다. 그때만 해도 나는 프라하에 익숙하다기 보다 여행자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에 굉장히 들떠 있었고 인기있는 관광지와 더불어 도시 곳곳을 다녔었다. 해질녘의 분홍빛 노을과 카를교, 프라하 성과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적갈색 지붕들, 스트르젤레츠키 섬에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잔 낮잠, 보트 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보던 야경, 여러 공원들에서의 산책.. 평범하고 여유로운 그 날들이 참 좋았다. 글을 쓰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프라하의 이미지 대부분은 처음 한달 동안 보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 때 받았던 인상이 강렬 했다.
한두 달이 지나자 처음 느꼈던 설렘은 익숙함과 편안함이 되었고 낯설던 학교생활도 차차 적응이 되었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성적 부담이 훨씬 덜하니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나는 이렇게 시간으로부터 익숙함과 여유로움을 얻은 반면 프라하라는 도시에는 질려갔다. 하루에 한 번씩 지나치는 프라하 성과 카를교는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렸고 낯설고 아름다운 관광지는 하나의 거점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분명 좋은 면도 많았지만 이 도시는 더이상 나에게 처음만큼의 효용을 주지 못했다. 따라서 여행지가 주는 두근거림을 찾아 자연스럽게 다른 도시로 눈을 돌렸고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한 게 집에 갈 때가 되니 다시 이 도시가 아름다워 보이고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들이 생겨난다. 조금 더 부지런해질걸, 조금 더 많이 다녀볼 걸 그랬다. 후회해도 이제 늦어버렸지만. 다음에 여행으로 라도 프라하를 찾게 된다면 무척이나 반가울 것 같고 다시 설렐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아쉬움과 서글픔을 동반한다. 충분할 것 같았던 다섯 달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고 나는 다시 치열한 곳으로 돌아가야하지만 그래도 참 잘 쉬었으니 후회는 없다 하겠다.
교환학생은 나에게 많은 여행의 기회와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여유를 되찾아주었다. 17년 2학기는 내 인생에서 몸도 마음도 가장 여유로웠던 다섯 달이며, 지원할지 말지 무척이나 망설였던 교환학생은 내 인생 최고로 잘한 선택이었다.
안녕, 프라하.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