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2017)]
0.
들어가기에 앞서, 이 독후감의 범위를 좀 더 넓히기로 했다.
무슨 소리냐면 더 이상 이 독후감은 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은 영화로 독후감을 써 보기로 한다.
영화를 '본다'를 넘어 영화를 '읽는' 독후감.
1.
최근에 들었던 문구 중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있었다.
직역하면 '소녀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문구에 대해 친구와 의논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의 의견이 참 걸작이었다.
"뭔 소리야. 소녀와 어울려야 하는 건 소년이지. 왕자와 어울려야 하는 건 공주고."
캬 고건 몰랐네!
벨은 디즈니 역사상으로는 다섯 번째 '디즈니 프린세스'다.
뭐 마지막은 왕자로 돌아온 야수와 결혼해서 프린세스가 되긴 했으니까.
그런데 작중에서 보여 준 모습으로 비추어봤을 땐 '프린세스'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 않나 싶다.
특출난 혈통인 것도 아니고, 아버지 구하려다가 야수 눈에 띈 게 전부니까.
그리고 엄연히 얘기해서 야수도 '왕자'는 아니다.
당장 작중에서 왕과 왕비가 나온 적이 있던가?
애초에 야수는 왕자가 아니라 최소 영주, 최고 왕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란 소리다.
쓰고나니 왕자보다 더 높아졌네. 뭐야 이거.
뭐 아무튼, 결론부터 얘기해서 '미녀와 야수'는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여주인공부터가 평민 출신인데 뭘 더 설명하랴.
2.
페미니즘.
현재 인터넷 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단어.
이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이 아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원한다.
'미녀와 야수'는 이 시대의 흐름이 어느 정도 섞여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왕자가 공주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평민 책벌레 소녀 벨이 야수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이번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그 점을 더더욱 부각시켜, 아예 성에서 입고 나온 드레스를 벗어버린다.
곧 '나는 공주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벨은 '공주'가 아닌 '소녀'로서, 야수의 성으로 돌아간다.
왜 그랬을까?
그 성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멋진 왕자라서? 그 옆자리를 차지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아니다. 거기 있었던 건 흉측한 몰골의 야수와 살아 움직이는 식기들 뿐이다.
그럼 벨은 왜 야수에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벨은 그 야수에게서 '소년'을 봤으니까.
마을에서 괴짜 취급만 받던 자신을 이해해 주는 소년을 봤으니까.
자신의 저주를 풀어 줄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던 소년을 봤으니까.
괴짜 책벌레 평민 벨과 흉측한 몰골의 야수 왕자.
두 사람이 서로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소녀'와 '소년'을 발견한다.
소녀와 소년의 만남. 가장 순수한 사랑의 형태.
그 사랑을 다뤘기 때문에 이 '미녀와 야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명작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직도 사랑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것처럼 말이다.
3.
가끔가다 이상한 손가락 모양 만들어서 사진 찍어 올려놓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렇게 해서 그치들이 뭔가 좀 이득을 봤으면 모르겠는데,
되려 그 작자들 덕분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지마저 곤두박질 치고 있다.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내면을 가꾸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어차피 외모가 예선이고 내면이 본선이라고 하면 일단 예선을 뚫어야 본선을 볼 수 있다는 소리니까.
그래도, 그래도.
적어도 사람을 외면만 보고 내면까지 평가절하한다든지,
남의 내면을 멋대로 판단한다든지 하는 행동은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Written by 김누렁이 (21. March.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