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1.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뭔 미친 소리야?"라고 말하면, 축하한다. 당신은 정상일 지도 모른다.
"췌장 뿐 아니라 심장도 다 줄게!"라고 말하면…… 미안하다. 안 됐지만 당신은 삼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일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그래서 이 책을 전부 읽게 된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거든.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13 中
강렬하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서점을 둘러보던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내장을 파먹겠다니, 주인공이 구미호라도 된단 말인가.
그럼 궁금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췌장일까.
보통은 간이라든가, 곱창이라든가, 그런 부위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췌장은 소화와 에너지 생산의 조정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당분을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인슐린을 만들어낸다. 만일 췌장이 없으면 인간은 에너지를 얻지 못해 죽는다. 그래서 너한테 췌장을 대접해드릴 수는 없겠다. 미안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14 中
여주인공 야마우치 사쿠라는 췌장에 병이 생겨 병원을 전전하는 시한부 인생이다.
남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사귈 생각도 안 하고 책만 읽는 외톨이 인생이다.
엥? 이거 완전 고슴도치 아니냐? (독후감 4화 참조)
시한부 삶을 사는 소녀와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 어찌보면 평범한, 진부하기까지 한 플롯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주인공 사쿠라는 흔히 말하는 '병약한 미소녀'와는 거리가 있는, 아주 팔팔하게 돌아다니는 소녀다.
오히려 남주인공 '나'가 작중에서 '음울해보이는 클래스메이트'라는 칭호로 불리며 음침하게 살아간다.
그런 '나'가 사쿠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육체적 췌장이 손상된 소녀와 정신적 췌장이 손상된 소년이 서로의 아픈 부위를 냠냠하는 이야기다.
3.
죽기 전에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어. (중략) / 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중략) / 그래. 너는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 나는 역시…….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 291 中
하지만 설마 결말마저도 '췌장을 먹어버리는' 결말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췌장을 먹어 소화시켜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피와 살이 된 그 췌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면, 다행이다. 애초에 스포일러니까 아무도 이해하지 말라고 배배 꼬아서 썼으니까.
누군가가 나의 췌장을 먹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췌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Written by 김누렁이 (1. July. 2017)
p.s : 최근 내 주위에 췌장이 아프게 된 친구가 한 명 생겼는데
누군가가 그 녀석의 췌장을 좀 먹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