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영화, 2017)]
<본 독후감에는 원작 소설 및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열람 시 주의를 요합니다.>
0.
좋아한다. I like you. 好きだ。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면 대개 이런 표현을 쓰기 마련이다.
사랑한다. I love you. 愛してる。
단순히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넘어가면,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 "사랑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를 넘어서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아니, 사랑 이상의 감정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주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선배 ***에 내 ** 비비고 싶어요." 같은 말은 참자. (영화 <스물>)>
1.
원작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하 <너췌>)를 완독한 사람이어도 영화 도입부 5분를 보고 나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원작과는 달리 이미 학교 선생님이 된 '나'가 과거를 회상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이야기의 실마리 중 하나인 '주인공의 본명' 역시, 영화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나오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어이, 시가 선생!" 이라고 외치는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소설 <너췌>에서는 ??????나 '클래스메이트'로 호칭되던 주인공이 자신의 본명을 스스로 밝힘으로써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반해, 영화 <너췌>에서는 본명이 도입부부터 밝혀지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을 넘어 선생님이 된다.
영화감독 나름대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의미를 재해석했다고 생각한다.
원작 <너췌>가 사쿠라로부터 힘을 얻어 쿄코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였다면, 영화 <너췌>는 그 힘으로 모든 이와 친구가 되어 자신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위치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2.
"췌장은 소화와 에너지 생산의 조정 역할을 한다. (중략) 만일 췌장이 없으면 인간은 에너지를 얻지 못해 죽는다. (후략)"
─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14 中
이미 몇 달 전에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하 <너췌>)로 독후감을 쓴 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너췌>가 만들어졌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내 독후감은 장르 불문하고 모든 작품을 다루며, 같은 작품이어도 다시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질 수 있기에 몇번이고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서문에서 스포일러 주의 문구를 붙이고 작품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주인공 '나'는 교우관계가 넓고 활기찬 삶을 사는 사쿠라를 계속 자기 자신과 비교한다.
저 명랑 쾌활하고 건강 발랄하며 우리 반에서 인기 최고인 그녀가 우리 반에서 가장 따분하고 음울하기 짝이 없는 남학생과 휴일에 함께 차를 마셨다는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57 中
그러나 사쿠라는 타인과의 접점 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너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너는, 너만은, 항상 너 자신이었어.
너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어.
─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287 ~ 289 中
위에서 나온 췌장의 역할과 대입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스스로 에너지(= 자신감)를 만들어낼 수 없어 바깥에서 가져와야 하는 사쿠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췌장의 고장난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멀쩡한 췌장으로 스스로 힘을 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부러워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는 마지막까지 그 얘기를 '나'의 앞에서 말하지 않고 그저 편지로만 남긴다.
이 역시 침묵을 지키느라 발견이 늦어지는 췌장암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나'에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말한 이유는, 그저 시답잖은 말장난 같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너췌>는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췌장을 냠냠해나가는 이야기다.
3.
"아니, 우연이 아냐.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중략) 그렇다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196 中
<너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한 얘기 역시 빠트릴 수 없다.
작중에서 사쿠라는 '진실이냐 도전이냐 놀이'를 통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실을 선택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도전을 선택한다. 낯뜨거워 질 수도 있는 행위일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과감히 실행한다.
진실을 선택한다. 진실을 선택한다. 도전을 선택한다. 진실을 선택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스스로 이끌어가며 살아간다.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째서 사쿠라가 '선택'을 부르짖게 되었는지는 작중에서 묘사되지는 않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쿠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췌장암이라는 게 자기가 선택해서 걸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자신의 '수명'을 '선택'할 수 없었던 대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닐까.
그녀가 죽었다. 세
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나는 여전히 만만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겨져 있다고만 생각했다. (중략) 최소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내일이 보장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253 中
그리고 결국 사쿠라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방향'으로 생을 마감해버린다.
사인. 연쇄살인마.
작년에도 우리나라를 한바탕 발칵 뒤집었던, 묻지마 살인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저 막연히 췌장암으로 조용히 눈을 감을 거라는 독자와 관객들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쳐준다.
삶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 죽음.
죽음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작가가 던지는 엄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사쿠라가 남긴 힘을 자신의 췌장에 품고,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4.
영화 <너췌>에 대한 감상평중에 '진부한 러브스토리'라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진부하지 않은 러브스토리'는 어떤 게 있을까.
모 영화처럼 혜성이 떨어지거나, 모 드라마처럼 예지몽을 꾸어야 진부하지 않은 러브스토리일까?
언뜻 보기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진부해보이는, 그러면서도 진부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췌장에 한송이 벚꽃을 심어주는 이야기이다.
※ 최후반부에 사쿠라가 '나'에게 "너는 왜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라고 했을 때,
왠지 모르게 서로의 이름 운운하던 어느 작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