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케장 단편선]
0.
아마 그런 생각을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에 자녀를 두신 분이라면 자녀가 이런 질문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
‘만화책으로 독후감을 쓸 수는 없을까?’
이미 지난 독후감에서도 밝혔듯이, 무슨 책이든 간에 보고 느낀 바가 있으면 충분히 독후감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책 리뷰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1.
아마 대형서점에서 이 책을 본 사람이 제법 될 것이다. 한 번 들었다 놔 보고는 "뭐 이딴 책이 다 있어?"라고 중얼거린 사람도 여럿 될 것이다. 실제로 책 표지에는 '김케장 단편선', '김케장 지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뒷표지에도 바코드와 값 15,000원만 적혀있는 파란색 바탕밖에 안 보인다.
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2.
"당신의 노래에는 감정이 실려있지 않아요."
"나는 프로이기 때문에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나도... 아니다."
─ 『김케장 단편선』 p.15 中
대신 귀여운 알파카를 드리겠습니다
─ 『김케장 단편선』 p.81 中
『김케장 단편선』은 개인 블로그에서 자신이 그린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케로로장재미슴(a.k.a 김케장)’ 의 작품들 중 일부를, 팬들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판한 책이다. 인용된 문장들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대개는 기묘한 말장난이나,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한 막무가내식 예측불허의 스토리 플롯으로 무장하고 있다.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그림체도 그저 그림판으로 그린 엉성한 그림이고, 대사도 맞춤법이 제대로 맞지 않고 엉망진창이다.
3.
"배의아퍼 웨어는 증발품이라구."
"뭐가 증발하는데???"
"글쎄. 형태로 남기지 못한 꿈이겠지."
─ 『김케장 단편선』 p.39 中
"시간을 가치있게 쓰는 사람이 있다면... 헛되이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해. 그래야 우주의 균형이 맞을 것 아냐."
─ 『김케장 단편선』 p.48 中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아무 말 대잔치'식 스토리로 그림판에 찍찍 그은 낙서를 15,000원에 파는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다. 가끔가다 튀어나오는 작가 나름대로의 철학적인(?) 메시지가 독자의 마음속에 파고들어오는 게 이 책의 진정한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괜히 후원자 867명이 클라우드 펀딩으로 16,547,763원이라는 거금을 모아 이 책을 출판한 게 아니다.
4.
꿈속에서나는열차를탄사람이었다
열차의내부는연한터쿼이즈빛깔
여기는미국이었고
내가열차를
열차에서열
차가내리고
나서나는도
착한곳을한
인시장의근
처인것을
낮은건물들의지
붕사이사이을연
결하고있는천막
들
천막에가려져있
느한인시장
많은물건들
많은것들이있고
중고등학생
무리가
분식을
삼삼오오
먹고
모여있
실로한국적인시장이
었다
나는하늘을모두덮
어버린수많은천막
들아래에서위화감
을느껴갔고
입구라고볼수있던건물들을빠
져나가면이러한어설프게한국
이되어버린시장에서다시미국
이된다는것이믿기지않았고
내가있어야할곳이
여기인지바깥인지
나는애도체왜미
국에와있는것일
까하고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 『김케장 단편선』 p.215 ~ 216 中
어찌 보면 21세기에 환생한 이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저 시대를 잘 만나 운 좋게 유명인사가 된 어린이를 보는 것만 같은 책이다. 대개는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책장 구석 어딘가에 꽂아 넣겠지만, 어쩌면 먼 훗날에 ‘21세기 초의 모더니즘 작품’이라는 미명하에 재발굴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