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장마’ 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소년 소녀의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그리고 그런 기대와 꿈은 교과서를 통해 읽을 때 한번,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단편집에서 읽었을 때 두 번째로 산산이 부서졌다. 소설의 배경은 6·25 전후이다. 인민군과 국군의 전쟁은 민가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 여파가 한 가정에 미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지금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한 것 같고 뭔가 내 경험과는 거리가 멀어서 앞서 읽었던 책들보다 와 닿지 않는다, 랄까. 그나마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어서 수업을 들었기에 내용 전달은 되었다.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전쟁의 비극. 그 비극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장마 는 그런 책이었다.
어린 동만이는 낯선 아저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삼촌이 있는 곳을 말해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좌익세력이었던 삼촌은 쫒기는 신세가 되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삼촌에 할머니는 애가 타고, 그 와중에 국군 아들을 둔 외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죽인 인민군 군인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이걸 들은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큰 다툼을 벌이고 만다. 외삼촌의 전사 소식이 들려온 후 할머니는 점차 신앙에 의존하게 되고 점쟁이를 만나 아들이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정작 기일이 되자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이를 보고 기절해버린 할머니를 뒤로하고 외할머니가 구렁이에게 예를 갖춰 타이른다. 외할머니는 그 구렁이를 삼촌의 현신으로 본 것이다. 외할머니가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우자 구렁이는 신기하게도 나무에서 내려와 제 갈길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나중에 깨어난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화해를 하며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물론 알고 보니 삼촌이 살아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열린 결말은 아니다. 단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화목했던 가정이 갈라서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경찰서 옆에 몸이 절단된 시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호기심에 가득 찬 채 바라보던 동만이의 시선은 비극적인 현실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느낀 점은 전쟁의 비극이나 작가의 섬세한 서술능력이 아니다. 좀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난 외삼촌과 삼촌을 비롯한 사람들의 신념과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자기 한 몸을 다 바쳐서까지 굽히지 않는 자세. 산속에서 몇 날 며칠을 고생하더라도 이념을 이루겠다는 그 뜻. 물론 그 뜻을 이으려다가 목숨을 잃었겠지만 그것마저 그들은 각오했을 것이다. 과연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그런 확고한 의지를 가진 적이 있었을까. 내 한 목숨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강하게 이루고 싶어 한 적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처럼, 지금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촉촉한 그 냄새가 소설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고조시키는 그런 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