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 악역이 있나요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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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김희원 악역.jpg

올초 홍콩에 있는 한국 회사에 잠시 스쳐 지나갈 때 나는

단 한명(내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몇분인지 체크했던 한국 여차장님)을

빼고는 대체로 모두와 잘 지냈던 것 같다.

<재밌는 일> 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2a824v

처음에는 한국 상사와 함께 밥을 먹다가 그 상사가 나를 싫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화장실에 가면 오질 않고 매번 실수를 한다는 이유로)

홍콩 남직원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남자들이 그런 야한 얘기를(검은 망사 스타킹을 입은 여자가 좋다,

한국 여차장은 항상 특정 홍콩 남직원의 귀에 바람을 불며 얘기한다 등) 재미삼아

많이 하는지를 몰랐고 나는 이러한 얘기에 목말랐었는지 허리가 꺽여져라 웃곤 했다.

(한국 여상사의 비위 맞추는 형식적인 얘기를 하는데도 지치던 참이었다)

(남자들은 나를 여자로 안 보는 듯 너무나 거침없이 그러한 얘기들을 나눴다……

나는 대학때도 그렇고 XX(내 이름)가 성격은 좋지… 라는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나의 남편만이 나를 여자로 봐주었다…

(나는 종종 남편한테 “오빠가 참 여자 보는 눈은 있지.^^”하면

남편은 여자 보는 눈 빼곤 다 있다고 한다..)

희안하다. 나 알고보면 엄청 매력적이고 섹시한데 말이다.

다들 마음의 눈으로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암튼 도시락을 싸와 회사에서 점심을 먹던 홍콩 여직원들하고는

식사는 같이 하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그들에게 친근하게 웃으며

안부도 묻고 다가가서 그런지 그들과도 사이가 괜찮았고

사장님이야 뭐 마주칠 일이 별로 없으니 사이가 나쁠 일이 없고

한국 남과장님이 있었는데 나랑 비슷하게 일에 목매달며 열심히 하시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분과도 사이가 좋았고 나는 대체로 모두와 잘 지냈던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모두와 대체적으로 잘 지낼 수 있었던

주된 공로는 누구에게 돌려야 하느냐.

그건 의외로 내가 아니라 그 모두가(아마도 사장님 빼고) 싫어했던 한국 여차장님이다.

나는 대체로 모두의 호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를,
그 나를 무진장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아주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았던 한국 여차장님께
이 모든 공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그닥 엄청나게 친절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 못 된다.

나의 친절과 인간됨(?)은 그저 보통 사람 수준이며 딱히 아주 좋은 사람의 수준은 못 되는데
그 회사에는 한국 여자가 나와 그 깐깐한 차장님 둘 뿐이었고 (내가 회사에서 나갈 때 쯤 한국 여직원을 새로 뽑았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차장님과 비교를 당하며 ‘무지 좋은 친절한 한국 여자’로 이미지가 잡혔던 것이다..

그 차장님이 너무나 친절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빛에 가려
‘친절한 한국 동료’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너무나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그 깐깐한 여차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도 이러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우리 남편은 본인이 직설적이고 항상 명령하듯 말하는 자기 엄마 성격과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기 싫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이유로 아무도 여자로 봐주지 않았던 나를 그렇게도 좋아해주었던 것이다.

왜냐.

내가 정말 착하고 좋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자기 엄마에 비해서는 착하고 여성스러워 보이니까..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여성스럽고 차분한 아내와 며느리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시어머니가 정말 여성스럽고 차분한 천상 여자와 같은 스타일이셨다면 나는 그 빛에 가려
그저 아무런 장점 없는 그냥 평범한 아내, 며느리로 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 유학을 다녀와서 자퇴했던 대학을 재입학하기 전 6개월동안 홈플러스에서 시트지를 팔았는데
그때도 역시 악역을 자처하는 한 여자 상사가 있었는데 그 분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러한 명령하는 듯한 말투, 깐깐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그 상사 덕분에 또한 정신적으로 괴로웠으나 그 덕분에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나 대신 욕해주며 나를 동정하며 나에게 더 잘해주곤 했다.

이토록 겉으로 보기에는 그 상사들과 나의 시어머니 때문에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내가 얻는 이득도 쏠쏠한 것이다.

악역을 자처하는 그들로 인해 나는 본의 아니게 착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그럼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배려를 더 받기도 한다.

그렇게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고 모두 성인처럼 천사같은 사람만 내 주위에 있다면
언뜻 생각하면 나에게 좋은 일로 보이지만 대신 나는 그들처럼 착하지 못한 별 장점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내 주위에 다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거 결코 좋은 일 아니다.

나는 마더 테레사를 영원히 이길 수 없으니…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더 빛나보이게 만들어주는 우리 인생의 부수적인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필요도,

그 사람들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더 빛난다.

맘껏 그들을 이용하자.

세상은 우리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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