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행복했을까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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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인 토니 로빈스는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당신 인생에서 잘못된 것을 모두 힘든 시간 탓으로 돌린다면, 좋은 것도 힘든 시간 때문이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 뭔가 명쾌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의 인생에서 잘못된 것이라.. 그것은 나의 인격 혹은 습성. 트라우마로 형성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불안한 습성. (내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어어~)
힘든 시간 탓이라.. 맞다. 나의 힘든 시간 탓이다. 전부 다 말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날들은.. 정말 희안하게도 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계단 삼아 딛고 올라가서(올라갔다고 하면 왠지 노력해서 얻은 뉘앙스가 나니 그냥 ‘거쳐서’..라고 말하는게 낫겠다), 그것들을 거쳐서 얻어낸 것들이었다. 희안하게도 그 힘들었던 시간이 없었다면 그 뒤의 최고의 순간들도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힘든 시간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뒤의 행복한 시간이 올 수 있었다. 힘든 시간 덕분에 나는 행복을 얻었다고 정말 진부하게..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진부한건 싫은데.. 뭔가 독창적으로 나만의 인생의 철학을, 깨달음을 쓰고 싶은데 결국 진실은 진부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날들..
내 인생의 자서전의 2권을 열어준(누군가가 책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넌 제2권이야..” 올……..감동) 남편과의 만남이다. 열정적이었던, 순수했던 사랑. 열정적이었던 눈빛. 순수했던 눈빛. 그냥 가만히 그날들을 떠올려 보면 눈은 저 멀리를 향하며 아련하고 입가엔 미소가 흐르는.. 그러한 내 기억 속의 순간들..

내 스스로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그리고 실제로도 이성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끙..)그가 나에게 보내주는 그 뜨거운(?)눈빛에, 그 순수한 눈빛에 나는 지독한(평생..)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나의 가정환경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지금 어느 정도 극복하고 약간의(?)자신감을 회복한 데에는 단연코 그 (지독한) 한사람의 사랑(혹은 인연)때문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지겹도록 사랑 사랑 타령을 하나 보다..

나는 중국 항주에서 운명의 그를 만났는데(남편은 중국사람이다)내가 그를 만나기 까지는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듯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운명의 상황들을 거쳐 만났다.

나는 대여섯해 정도 되는 기간동안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지 꽤 됐지만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그런 버릇. 바로 자다가 악몽을 꾸며 비명을 지르며 깨는 버릇이다.. 지금이야 이게 뭐 그리 부끄럽다고 숨겼을까 싶지만(오죽 당당하면 여기에 쓰겠는가..)상처 받은 사람들이 늘 그렇듯 자신의 상처와 치부를 굉장히 부풀려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는 정말 그게 크게 남부끄러운 일인줄 알았다. 그 얘기를 하면 누군가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정신과 약 복용을 권유하며 나와 깊게 교류하기를 꺼릴 것 같았다.

그 남부끄러운(줄 알았던)버릇은 아빠와 엄마의 두번째 이혼 과정에서 생겼는데(첫번째 이혼은 내가 아기 때라 모르지만..)이혼 안 해준다는 아빠가 부엌칼을 꺼내시고 경찰을 부르고(난 그때 마침 쌍커풀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부은 소시지 눈커풀로 그 공포 분위기에 구색을 맞춰 주었다) 그때 이후로 꿈에 아빠나 뭔가 알 수 없는 존재가 나를 쫓아오면 나는 끔찍한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꼭 비명을 질러 내가 내 자신을 놀래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꿈에 아빠가 쫓아와서 비명을 지르며 겨우 꿈 속의 아빠를 따돌렸는데 현실에서 아빠가 왜 그러냐며 내 방으로 달려오신 건… 이건 한번 더 깰 수도 없고.. 오싹..)

암튼 그때부터 시작해 운명의 그와 결혼 후까지도 여러 해 지속되었던 그 한밤의 비명은 그의 사랑을 받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지금 거즌 십년 정도(올해 결혼 십주년이다) 다행히 자취를 감췄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 과정은 험난했다. 무서운 아빠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 모녀 셋이 몰래 피지라는 곳으로 갑자기 이민을 가 자취를 감춰버릴까 계획한 적도 있다. (그런데 십년정도 키운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이민업체 직원의 말에 소리 소문 없는 이민계획을 포기했다. 우리 강아지 뽀미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됐건 힘겨운 자유를 쟁취하고 나서 나는 중국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되었고(전공이 중국어였으나 아빠가 있었으면 절대 유학을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빠 때문에 나는 대학 MT에 갔다가 나만 당일에 와야 했다)그 곳에서 내 인생을 바꿀만한 그와의 만남이 있게 된 것이다. (피지에 갔다면, 더 이국적인 피지남(왠지 지성피부가 생각나는..)을 만나 더 잘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한국 대학을 자퇴하고 중국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신랑은 그 학교 학생이었다) 학업도, 교우관계도 어느 것 하나 적응하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로 폭식하고 (그 결과 심하게 살찌고 얼굴에는 뭐가 나고) 방황하던 시절, 딱 그때 (하필이면 내가 가장 못생기고 못났을 때….!)정말 우연히, 운명적으로, 나와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그를 만났다.

이성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었던 (동성친구가 “너가 내 남친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나는 그 사랑에 열병처럼 휘말려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그의 사랑에 그토록 빠졌던 데에는 나의 환경의 영향이 컸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적응을 못하고 심하게 방황하고 내 자신을 자책하고 역시 난 어딜 가나 마찬가지야..하고 불행해했던 그 시간에 그를 만났기에 그에게 그토록 빠져들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그토록 불행할 때, 내가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 누군가가 너 이거 한번 잡아볼래? 하고 슬쩍 방아줄을 던졌을 뿐인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꽉 잡고 놓질 않았던 것이다..(지금도 그 지푸라기를 평생 놓지 않을 작정이지만.. 너는 내 운명.. 아니.. 지푸라기..)

내 인생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힘든 시간 때문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잘 되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결국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불행이 너무 진했기에 작은 관심도, 작은 행복도 이토록 크게 느끼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진하듯이, 그림자가 있으면 반대로 빛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음.. 억지로 불행을 추천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었던, 절대 겪고 싶지 않았던 그러한 힘든 시간들을 우리는 어쨌든 좋든 싫든 겪었고, 견뎌냈고, 지금도 살아있고, 우리는 그 시간들, 그 그림자들 덕분에 앞으로 더 강하게 빛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 우리,
빛을 만들어내자.

우리의 그림자가 슬퍼하지 않도록.

나는 왜 행복했을까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