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남편과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친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두운 목소리의 언니는 통화 괜찮냐고 물어보더니 괜찮다고 하자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랑 친하게 지내던 그 XX엄마 알지? 그 엄마가 며칠 전 크리스마스에 죽었어.. 자살인 것 같아..”
나의 언니와 친하게 지냈던 두아이의 엄마였던 그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며칠 전에도 언니와 만났으며 언니 말로는 특별한 다른 징조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는 원래 자기가 자기 말만 하는 스타일이니 그 아기엄마가 자기한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을거라며 괜한 자책을 했다.
언니 말로는 그 아기엄마는 평소 집에서 만날 때도 단 한번도 맨발인 모습을 언니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한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평소 특별한 고민도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은 언니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듯 했다.
샤이니 종현의 유서에서 이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나도 우울하게 보낸 시절이 있기에 저 말의 깊이를 감히 다는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저 말 속에 담겨진 절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종현의 저 말이 내 가슴에 아리게 박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지 우리는 쉽게 그들에게 ‘죽을 힘으로 살지’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너무나 쉽게 내뱉는 얘기가 아닐런지.
종현은 지금껏 자신이 버텨온 것도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다고 유서에서 밝혔고 그는 결국 살 용기 대신에 죽을 용기를 택했다..
종현은 유서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 하는 의사에 대한 원망을 표현했는데,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그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정신과 치료는 더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보통 “정신력이 약해~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어. 죽을 용기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봐.”라며 편하게 조언하지만 그리 쉽게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면 그가 먼저 진작 의지력으로 일어서지 않았을까?
우리에겐 남의 인생이지만 그에겐 전부가 걸린 그 자신의 인생이다. 그가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면 당연히 진작 이겨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에게 가장 큰 독은 그 사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어설픈 판단과 비판이다. 그러한 그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판단은 안 그래도 힘든 그를 더욱더 고립시킨다.
종현이 유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다. 나보다 약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니, 왜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저러는거야, 더 힘든 사람도 사는데!’ 라며 답답해하지만 우리는 겪어보지 않으면 그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의 아픔을 짐작할 수 없다.
행복이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듯이, 아픔도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까진 정도의 상처가 누군가에겐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아프게 느껴진다.
그러니 그 본인이 아니면 ‘너가 성격이 너무 예민한게 문제야~ 정신력이 약해.’ 이러한 말을 조언이랍시고 쉽게 내뱉는 것은 아무말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 하다. 가끔은 말 없이 그저 그 사람을 지켜보는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종현이나 언니의 지인인 그 아기엄마에게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들은 어떻게든 또 다시 분투하며 이 세상을 살아보려 노력했을까.
얼마전 엄마와 통화하다가 또 한명의 엄마 지인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엄마 지인의 딸인데 나보다 겨우 한살 많을 뿐인데 재정적 문제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분에게도 어린 아이가 둘이 있었다..
나는 겁쟁이라 혹은 삶에 애착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금까지 아무리 우울했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근데 이렇게 나도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지켜야 할 아이가 있는데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SNS를 보면 다 행복한 사진만 보여 나말고는 다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자주 뚱해지는 나도 SNS에는 고르고 고른 제일 맘에 드는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 올린다. 아니, 평소에 안 그래도 뚱한 표정인데 굳이 또 그런 사진을 또 올릴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도 이왕이면 사진이라도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싶은 마음에서다.
그래, 나도 이런 때가 있었어. 하며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니 SNS만 보고 나만 이런거야..? 라며 소외감 느끼지 않길 바란다. 다들 고르고 고른 사진만 올리는 거니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레 짐작으로 타인의 아픔을 짐작해버린다. 그리고 섣부른 조언을 한다.
타인의 말은, 타인의 눈빛은 아픔을 느끼고 있는 당사자에겐 너무나 큰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설령 아무 생각 없이 선의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선의가 꼭 선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선의 반대말은 선의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선의 반대말은 선의…
우리는 종종 선을 행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힌다.
‘나는 선의니까 괜찮겠지..’란 마음으로 할말 안할말 속마음을 거르지 않고 다 전달해버린다.
내가 선의로 생각한 것이라고 해서 그게 꼭 선은 아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는 별 생각없이 한 작은 말도 비수가 되어 그를 갈기갈기 찢을 수도 있다.
상처 한번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우리 인간관계가 무 자르듯 딱 이 선에서 이 선까지 선을 그을수 있겠느냐만은, 조금은 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자.
내가 선의라고 해서 꼭 선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선의도 정말 선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나의 다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잠시 이용하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볼만 하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 서로 토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공감만이 꽁꽁 얼은 마음을 녹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