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방법은 아마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나로 살 수 있는 것.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친구아들과 비교 당했고 반친구들보다 일이등 높고 낮은 성적에 웃고 울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외모와 학벌로 평가 받았고 남들의 나에 대한 평가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스펙을 올리는데 전념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자격증을 따면 더 높은 학벌을 가지면 나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지고 타인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될줄 알았건만, 어디를 가나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잘난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또 다시 비교의 늪에 빠졌다..
요즘엔 그나마 타인의 평가에 아주 연연하지는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만약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서 내가 그것을 도달해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아마 평생을 타인의 평가에, 세상의 기준에 매달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기준에 못 미치는 나를 보며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 따위는 나의 환상이었을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건 같은 나를 두고 사람들이 벌이는 제각각의 반응들 덕분이다.
똑같은 나를 두고 누구는 이런 평가를 누구는 이런 평가를 내리며 나를 비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고 나를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고 대단하게 여기기도 한다. 나는 똑같은 한사람인데 불구하고 말이다.
법륜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똑같은 사람이라도 누군 좋아하고 누군 싫어해요. 내가 좋아해달라고 해서 좋아해주는 게 아니에요.”
일본 사람은 보통 엄청 예의 바르다. 중국 유학 시절 일본친구 두명이 있었는데(그 중 한명에게는 고백을 받았었다..훗) 하나같이 다 예의가 발랐다. 나는 예의가 바르고 잘 웃는 그 친구들을 좋아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은 웃기만 하고 속을 알 수 없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딱히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라고 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과 입맛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일주일쯤 뒤에 엄마들 카페에 문의하는 글을 올렸다.
“출생 일주일 된 아기 변이 몽우리가 져서 나와요. 첫째 아이 때는 이런 적이 없었던거 같은데 걱정되네요. 정상인가요? 아시는 분 도움 좀 주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아기 변 사진을 한장 첨부하고 제목에 (사진 유)라고 썼다.
나는 인터넷 카페를 자주 이용하지 않고 글 올려본 적도 오랜만이었기에 변 사진과 같이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은 매너 사진으로 미리 대표사진을 따로 한장 올리고 그 뒤에 올리고 싶은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사진 유)라고만 쓰면 사진을 보고 싶은 사람만 클릭하는 것으로 알았다.
알고보니 아기 변 사진이 클릭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보였고,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없어 댓글 확인을 뒤늦게 했는데 내 글은 뜨거운 감자가 되있었으며 비난의 화살로 내 글은 댓글 도배가 되어있었다..
‘헉’이란 말과 함께 놀라는 이모티콘부터 시작해서 ‘밥 먹고 있었는데’ ‘매너사진을 잊으셨나봐요’ ‘정상입니다. 매너사진으로 변경해주세요’ ‘아니 이 사람은 글을 올려놓고 댓글 확인도 안 하나?!’ 등등 여러 댓글이 달려있었는데
그 중 가장 속상했던 댓글은 바로
“아 욕 나와”
..... 비록 내가 아기 변 매너사진을 모르고 올렸지만 이제 출산한지 일주일 된 피곤한 산모의 심정을 같은 아기엄마 입장으로서 모르는 게 아닐텐데 아무말 없이 욕 나온다고만 쓰다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의 무지로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이 맞기에 비난으로 너덜너덜해진 내 글에 아무런 댓글도 남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디마저 아름다운 “별빛xx”이란 아기 엄마께서 비난으로 가득한 댓글 가운데 나에 대해 유일하게 웃음 표시를 남겨주신 댓글을 발견..!
“대표 사진을 다른 걸로 처음에 올려주시고 두번째에 아기 변 사진을 올려주세요.^^”
그래서 무서운 비난의 가시밭길을 슬슬 헤쳐나가 그 웃음 표시 댓글에만 유일하게 답글을 남겼다.
“죄송해요.ㅜㅜ 매너사진 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ㅜㅜ (사진 유)라고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저한테 유일하게 웃음 표시를 남겨주셔서 용기내어 답글 답니다..”
그러니 아이디도 아름다운 별빛 엄마께서는 더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셨다.
“괜찮아요^^ 저도 아기 변 때문에 걱정이 많았어서 아기 변 사진 많이 올려봐서 알아요. 상처 받지 마세요.^^”
아...ㅜㅜ
이 얼마나 따뜻한 댓글인가..
모두가 나에게 욕 나오는 상황에서 별빛엄마는 나에게 별빛과 같이 빛나는 공감의 위로를 해주었고 나는 출산 후 부서지는 관절과 잠이 부족해 멍한 데다가 욕까지 바가지로 얻어먹어 역시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라고 다시금 움츠러 들려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았다.
‘그래도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이야..^^’
물론 별빛 엄마는 나에게 그런 댓글을 남긴 것조차 지금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작은 공감의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향해 닫히려던 마음을 다시 열 수 있었고 다시금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똑같은 나, 똑같은 글이라도 세상사람들의 나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제각기라는 것.
그것을 여실히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에 조금은 덜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다.
사랑 받고 행복해지는 객관적인 기준이란 없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이 있다고 믿어왔을 뿐이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도 우리를 좋아해주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비난의 수십개 댓글 중에서 단 한개의 공감의 댓글이 있었듯이 그 소중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 소중한 것이다..)
선과 악을 따지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밥맛을 잃게 만든 변 사진을 올린 내가 악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욕 나온단 댓글을 남겨준 사람이 악으로 보였지만.
선과 악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나나 상대방이 선으로 보이든 악으로 보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나를 욕하는 사람은 존재하고 또 소수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
우리가 이 냉혹한 세상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오늘도 웃으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냉혹한 수십명의 사람 중에 단 한명 나를 이해해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찾기 위해서.
내가 숨어버리면, 상처 받아 다음번에 만날 사람에게도 날카로운 가시만 내비치면 그 따뜻한 마음마저도 상처를 입고 나에게 다가올 엄두를 내질 못 한다.
그러니 우리 비록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활짝 웃으며 사람들에게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자. 그 많은 사람 중에 단 한사람 나를 따뜻한 눈길로 봐줄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 별빛은 세상에 지치고 상처받은 우리를 구원할거고 그 별빛을 보고 생기를 되찾는 나를 보며 그 별빛도 더더욱 빛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관계를 위해 우리는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다시금 세상에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 다 있다. 우리가 운이 없어 어쩌다 한번 똥 밟은 걸 가지고 평생 의기소침하게 살지 말자.
굽어진 어깨를 쫙 피고 당당하게 활짝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자.
상처 받으면 그 사람을 재빨리 스킵하고 또 우리를 이해해줄 우정을 나눌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마음의 문을 열자.
우리를 빛나게 해줄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내가 김밥이라면 떡볶이 같은 친구를 만나 나를 더 맛있게 만들어줄 사람을 만나자.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오늘도 웃어야 하는 이유다.
웃자.
당당하게 어깨 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