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애초부터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지침, 지시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한테는 자매끼리 잘 지내야 한다, 언니 말 잘 들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학교에서는 무작위로 나에게 운명적으로 배정된 선생님의 성향에 맞춰 그 분의 지침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중학교 복장 검사 때 학교 뱃지 다는 것을 잊어버려 따귀를 맞았던 나는 ‘이거 뭐지? 나 큰 잘못을 한건가? 도대체 누가 잘못인거지?’란 생각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는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항상 입술을 새빨갛게 바르셨던 깐깐한 말투의 영어 선생님의 깜지 숙제 덕분에 그나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인 영어가 싫어지기도 한 적도 있다.
대학교 때는 정말 지금 생각하면 완전 어이없는, 겨우 한두살 차이의 선배들한테 기합 훈련(?)같은 것을 받았는데 그때 그 선배들은 자신들이 무슨 군대 조교라도 된냥 엄청나게 엄격한 얼굴을 하며 갓 들어온 어리벙벙한 신입생들을 기죽이기 바빴다.
대학원 때는 학과장 교수님께서 평소에는 허허 하며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시다가 학생들 중 어느 한명이 그 교수님의 교수 방식에 대한 비판을 한다 치면 빈정이 상했음을 온몸으로 표시하셨다.
그 장면을 몇번 목격한 후 그 분의 성향에 맞춰 미소와 존경하는 척, 친한 척 하는 행동을 해드린 결과로 딱히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았으나 교수님 역량으로 중간 성적은 받아 간신히 졸업은 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는 회사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을 독촉하는 전화도 했어야 했는데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데 익숙하지 않은(싫은 소리를 듣는 데는 익숙하지만)성격으로
“그렇게 하면 나 같아도 돈 안 주겠다”라는 차장님의 핀잔을 들으며 또 한번 나는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님을, 여기 지침에 따를 수 없음을 다시금 느꼈더랬다.
결혼 후에는 집안일을 강조하시는 시어머니의 지침을 따르지 못해(따르고 싶지 않아)또 한번 나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두 아이를 낳은 지금은 내가 어떤 지침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지 그 문제로 가끔 진지하게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겠으나 거즌 반평생 가까이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반평생동안 나는 무작위로 나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지침에 따라 행동해왔으며 (그 지침에 따르지 않을 시에는 따귀, 깜지 등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그 지침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제 나는 예전처럼 주어진 지침을 무조건 수용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이 지침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내가 이 지침에 따라 사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져왔던
여러가지 지침들. 제약들.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더 발전했을까.
아니면 우리의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잘려버렸을까.
우리의 지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이 이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그때가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