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방에서 쉬다가 정수기 물을 마시러 복도로 나왔는데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대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기의 성질에 못이겨 목청이 부서져라 미친듯 소리를 질러대는 그 남자의 화풀이 상대는 바로 네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남자는 아이의 아빠일테고 두려워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물을 마시던 나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 방에서 나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는데 아이 아빠는 아이와 아이엄마를 함께 혼내는듯 했고 “너 내 말 잘 알아들었느냐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란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아이엄마는 아이를 안고 밖에 나와 아이를 잠깐 달랜 후 다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또 다시 “너 내 말 잘 알아들었느냐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그 말을 반복 또 반복.
사람한테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는데 나는 왠지 저 아이아빠가 혹시 종종 웃통을 벗고 나와 복도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러 나오던 조직의 일원같이 인상 안 좋던 남자가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아내는 지금 혼나는 아이의 동생을 낳고 산후조리하는 몸인데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저렇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다니..
아내는 아무말 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나와 다독거렸고 남편은 자기 집도 아닌 이 곳에서도 저리 고래고래 목청이 터져라 남 신경 안 쓰고 자기 화풀이를 하는 것을 보니 평소에 집에서 어찌 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고래고래 자신의 성질에 못 이겨 쓰러질듯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의 목소리..
두려움에 떨며 우는 아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
나는 이 순간이 이제는 소설처럼 느껴지는 나의 과거와 오버랩 되었고 두려움에 떨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항상 술에 취해 충혈되어 있던
아버지의 무서운 눈..
겁에 질려있던 무력했던 엄마..
서로를 의지했던 자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소설에서 보았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월이 많이 지났고 나는 이미 그때의 무력했던 어린 아이가 아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아직도 나에게 훈장처럼 남아있으나 나는 이제 그것에 지배받지 않는다.
어릴 때는 뇌가 말랑해서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또 그것을 극대화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시절에 느꼈던 것들은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아주 깊게 우리의 무의식에 새겨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인생의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상황을 겪어도 자신의 무의식에 새겨진 그 자부심으로 조금 더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나간다.
저 아이아빠도 상처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의 찌꺼기를 올바른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 해소 방식으로 가엾은 아내와 아이를 선택했으리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해야 한다.
우리의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하지 않고 사람을 대한다면 내가 그 사람한테 상처를 주던지 아니면 내가 상처를 받던지 둘 중의 하나다.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길에서 그냥 스치는 사람의 표정조차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친절은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의 표정, 말투, 행동이 우리 생각보다도 더 크게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일 아침 쾌변을 봐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듯이 우리의 감정의 찌꺼기도 매번 해소해주어야 한다.
감정의 쾌변 상태로 사람을 대한다면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미소를, 격려와 위로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도 더 중요한 존재다.
자신을 좀 더 귀중히 여기고,
타인도 자신만큼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매순간 떠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