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 자신을 실제로 잘 아는 사람과 실은 날 잘 모르는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은 이렇다.
나를 좀 안다 하는 사람은(내 자신 포함)알고 있다. 내가 굉장히 내성적이고 또 이기적이라는 것을.(“너는 너만 생각하잖아.”라고 말을 하며 나를 떠난 친구도 있었다. 그 당시엔 억울해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친구가 정말 나를 잘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굉장히 밝고 또 이타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나는 중간이 없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자기 보호의 일환으로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웃는 가면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가면인지 가면이 나인지, 무엇이 진짜 나인지 정체성의 혼란으로 힘들어했다.(나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을 힘든 일로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31szc
비교적 순수했던(이미 그 순수함은 오래 전에 잃어버렸지만..)어린 시절에는 내성적인 내 본연의 모습을 많이 드러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보며 살았기에 나는 머리가 커지고 난 어느 순간부터 활발한 가면을 쓰게 되었다.
처음 어떤 집단에 들어갈 때, 특히 내가 많이 긴장하고 있을 때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단단히 쓰고 있는데, 새로 학교나 회사를 들어가는 경우 같은 것들이다.
얼마나 가면을 두껍게 썼으면 그 곳에서 나를 알고(모르고)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성격 좋은 사람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였다. (이제는 생각한다. 정말 정말 좋아보이는, 극단만 보여주는 사람에겐 뭔가 구린(?)면이 있다고 말이다...)
홍콩에서 한국 물류 회사에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시큰둥하던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살신성인도 감수할듯한 왕부담스러운 활발함으로 금새 모두와 친해졌다.(사실 아무와도 친해지지 못했지만)
나는 그 힘으로, 그 집단의 일원이 되어 얻은 유대감을 붙잡고 나머지 힘든 것들(반복되는 업무의 무의미함과 나를 유일하게 싫어했던 상사가 나에게 뿜어내는 독한 레이저 같은 것들)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들과 연결되어 여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유대감이 무의미함에 질식하려는 나를 숨쉴 수 있게 건져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영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지만 내가 이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의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넋을 잃을만한 메소드 연기를 펼친 대가로 나는 유대감을 얻었고 나는 그 유대감이라는 폭신한 방석을 깔고 무의미함으로 무장한 딱딱한 바닥 생활을 견뎌냈다.
혼자서 쓸쓸히 밥을 먹으러(그러나 두 눈은 나를 향해 미움의 레이저를 발사하는)나가는 한국 상사를 남겨둔 채 나는 의기양양하게 홍콩 직원들과 우르르 밥을 먹으러 나갔다.
그리고 나는 나를 싫어하는 상사에게 복수로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고립감을 성공적으로 전달해주었다.
착한 척 하면서 사실 영악한 나란 사람은 내가 상처를 받은 만큼 그에게 비슷한 양만큼의 상처를 공평하게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회사를 떠난 후에도 그녀에 대한 미움은 딱히 남지 않았고 내 뇌는 가장 무섭다는 무관심 모드로 그녀를 내 기억 속에서 지웠다.(내가 정말 착하게 다 이해했다면 오히려 계속 그녀를 미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무리라는 것은 참 무섭다. 혼자 있으면 감히 하지 못할 일들도 무리에 있으면 왠지 용기가 난다.
그리고 난 그저 무리의 ‘일원’으로서 행동했을 뿐이니 ‘나 혼자’ 나쁜 사람이라는 죄책감도 덜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심각한 왕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나에게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웃는 가면을 썼고 그 가면으로 인해 유대감을 얻어 사회적 동물답게 그 안에서 나는 안정감(간혹 행복감까지도)을 얻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나는 그 무리 안에서 얻은 안정감으로 다른 이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나는 이제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싶지 않아(사실은 일 하고 싶지 않아)두달반 만에 회사를 관뒀고 이제는 육아(사실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래도 웃는 가면을 썼기에 내가 손쉽게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얻은 안정감으로 나는 그 시절을 불행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다시 겪고 싶진 않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무리에 휩쓸려 다니는 그 생활을 오래 했다면 나는 나를 감추고 억눌렀을 것이고 처음에 나를 살려줬던 무리의 일원이라는 안정감은 점점 나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거운 갑옷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엔 나를 지켜줬지만 이젠 너무나 무거워진, 짐이 되어버린 두꺼운 갑옷..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늘 유대감을 갖기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나를 일부 감추고 꾸미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리에 맞춘 덕분에 우리가 원했던 유대감을 얻어 마음의 안정을 꾀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안전만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욕구와 어딘가에서 떠나고 싶은 욕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은 밖에 두고 있더라도 마음은 늘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무리에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기.
혼자 있으면서도 유대감을 잃어버리지 않기.
안정과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며 나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
모든 중용과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참 어렵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