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가 지중해 서해안에 이어 이집트까지 손안에 넣자 다리우스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절반이, 무엇보다도 제국의 부와 번영을 책임져온 이집트를 상실한 것이 너무나 뼈아픈 탓이었다.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친서를 보냈다. 몸값 1만 탈란톤을 줄 테니 포로들을 풀어달라는 것과,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과 자신의 딸들 가운데 한 명을 알렉산드로스의 아내로 주는 조건으로 양국이 전쟁을 끝내고 동맹을 맺자는 내용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왕이 보낸 편지를 절친한 동료인 파르메니온에게 보여주자 파르메니온은 “내가 알렉산드로스라면 다리우스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나도 내가 파르메니온이었다면 그랬을 거야”라며 휴전 제의를 주저 없이 일축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와 왕 대 왕으로가 아니라 정복자와 피정복자로서 만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알렉산드로스라는 사내였다.
이 무렵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 진영에서 탈출해 돌아온 환관 테이레오스가 아이를 낳다 사망한 페르시아의 왕비를 위해 알렉산드로스가 장례식을 군중에서 성대하게 치러준 사실을 보고하자 다리우스는 만약 페르시아가 멸망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키로스의 왕좌에 다만 알렉산드로스만이 앉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기도를 마친 그는 100만 명으로 그 규모가 알려진 엄청난 숫자의 대군을 이끌고 가우가멜라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왕이 이미 패배감에 굴복한 이상 100만 대군은 머릿수만 많았을 따름이지, 실질적으로는 이미 종이호랑이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숫자의 힘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페르시아 군대가 한밤중에 횃불과 모닥불을 이용해 사열식을 진행하자 겁에 질린 마케도니아의 여러 장수들은 적이 압도적 숫자의 위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도록 야습을 감행하자고 진언했다. 때마침 그날은 달빛이 희미한 월식이었다. 소수의 군대가 야음을 틈타 대규모 적군에게 기습을 가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시점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은 태산처럼 무거웠다. 그는 “승리를 도둑질하지 않겠다”면서 밝은 햇빛 아래서 정정당당하게 회전을 벌이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가 대낮에 명백한 패배를 당해야만 좁은 지형이나 나쁜 날씨 등을 핑계로 둘러대거나, 애꿎은 남 탓을 하지 못하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할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