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현대 한국의 천박한 짝퉁 스파르타 학원들과는 달리 진짜 스파르타식 교육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이뤄졌다.
성공하는 개혁은 예외 없는 개혁이어야 한다. 공동식사의 규칙이 오랜 세월 엄격하게 지켜진 비결은 왕조차 여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데 있었다. 예컨대 아테네 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기스 왕은 왕비와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겠다고 말했다가 벌금을 부과당했다.
15명이 한 무리를 이루는 공동식사는 소년들을 위한 교육장이기도 했다. 소년들은 이곳에서 스파르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법과 행실을 배웠다. 식사를 할 때는 짓궂고 격의 없는 농담이 오갔다. 식사 자리에서 나눈 담화를 문밖으로 가져가는 것이 철저히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이 무리에 끼려면 구성원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금기사항은 또 있었다. 식사모임이 파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횃불을 켜서는 안 됐다. 밤길을 두려움 없이 다니도록 훈련시키는 일 역시 공동식사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리쿠르고스는 그가 제정한 법령을 ‘레트라’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으로부터 받아온 신탁이라는 뜻이었다. 리쿠르고스는 그 어느 법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법의 성문화를 금지해놓은 것이 가장 중요한 레트라였기 때문이다. 리쿠르고스는 법이 시민들의 정신과 생활습관에 삼투하기를 바랐다. 그는 글과 문장에 의존해 운용되는 법은 죽은 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리쿠르고스는 교육의 역할에 커다란 가치와 중요성을 부여했다.
성문법의 금지 다음으로 중요한 레트라는 사치와 낭비를 엄금하는 조항이었다. 리쿠르고스는 돈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에 따라서 모든 집들은 지붕은 도끼만을 이용해 올려야 했고, 문은 톱 이외의 도구로는 만들 수가 없었다.
세 번째로 중대한 법령은 동일한 적과의 연속적 교전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이것은 적들이 스파르타의 강점을 따라 배우지 못하도록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법령이었다. 다른 레트라들과 마찬가지로 세 번째 레트라 역시 종국에는 지켜지지 못했다. 훗날 아게실라오스가 보이오티아 원정을 거듭하다가 테베에게 참패하자 안탈키다스는 “전쟁의 ‘전’자도 몰랐던 테베인들에게 싸움을 가르쳐준 대가를 전하께서 아주 잘 받아내셨습니다”라고 왕을 야유했다.
리쿠르고스는 교육은 생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빈틈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가 결혼과 출산에 관련된 일들을 세심하게 규제하면서 여성들에게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인 동기였다. 그는 처녀들에게도 달리기, 씨름, 투창, 원반던지기와 같은 활발한 체육활동을 장려했다. 모태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할 것이라는 지극히 합리적 판단이었다. 리쿠르고스는 젊은 처녀들을 또래의 청년들처럼 속옷 바람으로 행진하게 했다. 여성들이 수줍고 소극적 태도를 버리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반나체의 처녀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용감한 청년들에게는 칭찬과 존경을 선사하고, 용기와 행실이 변변치 못한 청년들에게는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처녀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 청년들한테 큰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타국 여인은 이러한 평가를 내렸다.
“스파르타의 여인네들은 남자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여성들인 것 같습니다.”
플라톤은 스파르타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덕분에 필연적으로 결혼이 촉진되었다고 말했다. 리쿠르고스의 의도가 정확히 적중한 셈이다. 결혼이 권장된 것과 반비례해 미혼 상태로 머물고 있는 독신자들에 대해서는 노골적 제재가 가해졌다. 그들에게 단연 망신살이 뻗치는 일은 겨울이 되면 속옷 바람으로 시장을 돌게 한 조치였다. 그것도 자신들의 처지에 관한 노래를 부르도록 하면서 돌게 했으니 오죽 부끄러웠으랴. 여기에 더해 결혼하지 않은 남성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른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사회적 공경과 예우를 누리지 모했다. 스파르타도, 조선도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 되는 사회였다.
결혼은 남성이 완력으로 마음에 드는 여인을 데려가는 약탈혼의 성격을 띠었는데, 이때 혼기에 도달한 처녀만을 데려갈 수가 있었다. 결혼한 남녀는 마치 밀회를 하듯이 한밤중에 잠시 동안만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즉 아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동안만 함께할 수 있었을 뿐 오랜 시간 잠자리를 갖지는 못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에 대해 풋풋한 설렘과 신선한 감정을 유지함으로써 오랜 결혼생활에 수반되기 쉬운 권태기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고 스파르타 사람들은 믿었다.
스파르타에서 결혼의 궁극적 목표는 미래에 강건한 전사로 자라날 아이들을 생산하는 데 있었다. 건강한 아들을 낳는 일에 도움만 될 수 있다면 아내 빌려주기, 곧 스와핑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이것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는 리쿠르고스가 아들을 아버지의 독점적 재산이 아니라 나라의 공동 소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와 말을 교배할 때에는 최고의 종견과 종마를 고집하면서, 아내는 꼭꼭 가둬놓고서 자기 아이만 낳으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아들을 아버지의 개인적 소망대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파르타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씨족의 장로들이 모인 곳으로 데려갔다. 여기에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은 아이에게는 9천 개 가운데 하나의 부지가 주어졌다. 반면에 허약해 보이는 아기는 타위게톤 산자락에 있는 아포테타이 협곡으로 보내져 벼랑 아래로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