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보통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보통사람이었던 청년 시절의 카토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달리 건강은 물론이고 머리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마르쿠스 카토(BC 234년~BC 149년)의 집안은 대대로 투스쿨룸에서 살았다. 그곳은 본래 사비니 족의 영토였다. 즉 카토는 정통적인 로마인이 아니었다. 로마가 아테네처럼 출신 성분을 빡빡하게 따지는 사회였다면 그는 입신출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카토가 정통 로마인이 아니었음은 기록에 남아 있는 그의 외모로도 증명된다. 그는 붉은 머리에 눈동자는 회색이었다. 모발색깔이 검고,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평균적 라틴민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세의 시인은 카토의 트집 잡기 좋아하는 성격은 빨강머리 탓으로, 그의 반항적 성격은 잿빛 눈동자의 소산으로 각각 돌렸다.
인종적으로는 물론 신분적으로도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이름만 들어도 대중이 쉬이 알 만한 쟁쟁한 조상을 지닌 동료 정치인들과는 달리 카토의 선조들은 문자 그대로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용감하고 유능한 군인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워 나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군대에서 어떠한 계급으로 복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둘 다 무명의 졸병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초라한 배경에 더해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민족의 자손. 바로 이 이유로 카토의 명성은 더욱 크고 빛났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로마인들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업적에 기초해 성공한 인물들을 ‘새 사람(新人)’이라고 부르며 대단히 높이 평가해줬기 때문이다. 그가 프리스쿠스라는 원래의 본명 대신에 카토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로마 시민들이 그의 역량과 재주를 인정해준 덕분이었다. 카토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을 뜻한다.
능력이 배경을 압도하는 현상은 성장가도를 질주하거나, 전성기를 향해 달리고 있는 사회의 일반적 특징이다. 능력이 아니라 배경이 한 인간의 운명과 성패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이는 해당 공동체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카토가 활약할 무렵의 로마를 로마의 젊은 청년들이 ‘헬로마’라고 저주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카토는 조상들처럼 평범한 무명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라 믿었던 출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노동과 운동으로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돈도 마찬가지이지만 머리도 아무나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빌려준 사람에게 돈이든 자리든 확실한 대가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변변치 않은 집안의 이름 없는 청년인 카토에게 선뜻 머리를 빌려줄 인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따라서 카토는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두뇌 또한 자급자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