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라톤이다.
많이들 들어 보셨죠. 저도 참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 역경과 고난의 과정을 마라톤에 비유할 때면 아 너무 진부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예전 제가 해외 생활 중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나름 선배랍시고 먼저 해외에 건너왔던 사람에게서 조언을 건네받았을 때도 속으로 생각했죠. 내 목표 같은 건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감흥도 없는 그런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 거 아니신지...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는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보다 나은 삶이건, 이국적인 곳에서의 일상에 대한 동경이건, 남겨놓고 온 가족, 커리어, 사랑, 언어, 돈 등등 무엇이 됐든 해외 생활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무색무취하게 느껴지는 때 찾아오죠.
나서기만 하면 감동이었던 거리의 모습이 완벽하게 일상이 되어버리고,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해볼까 아둥바둥대던 언어가 이제 웬만한 일상 대화는 가능해질 때. 이럴 때면 쓰던 표현만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으로 돌려대기 시작하며 소통에서 찾던 감격이 사라집니다. 그래도 많이 적응했다 생각했음에도, 로컬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낯선 타인인 위치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고요.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인지라 분명 보다 나은 삶이라 자화자찬하던 생활 속에서도 굳이 굳이 단점을 찾아내어 곧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죠. 한국이었으면 2분이면 끝날 일이구만, 여긴 왜 이리 인터넷이 느린 거야 식으로 말이에요. 그게 불만이면 다시 돌아가던가..
여튼 그렇게 슬럼프에 빠졌던 당시에,
멘토 분께 평생 좌우명으로 삼게 된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Be positive.
이 말을 항상 입 밖으로 내어놓으라 말씀해주시면서 보스턴에 다녀와라 말씀해주셨습니다. 뜬금없기는 했지만 차로 4시간만 달리면 되니까 뭐. 바람도 쐴 겸, 흔쾌히 다녀오겠노라 말씀드리고 길을 나섰었습니다.
그분이 보스턴에 다녀오라고 했던 이유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라톤 대회를 꼭 구경하고, 결승 지점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결승 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대회를 지켜봤습니다.
마라토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시절, 나라에서 마라톤 주자가 지나가는 경로에 학생들을 배치했던 기억이 났거든요. 반 친구들이랑 멋모르고 학교 선생님 따라 나가 멀뚱멀뚱 서있다 박수 치고 돌아왔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기대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멘토 분의 권유는 그저 이벤트니 구경이나 하고 와라는 말씀이었겠거니 싶었어요.
그런데 마라토너가 눈앞에 지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회 내내 소름이 돋을 줄이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던 시절 바라보던 마라톤과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하는 세상을 겪고 난 후 지켜보는 마라톤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마라토너들이 지나가기 시작하자 이런 물음들이 계속 떠올랐던 거죠. 뭐 그리 대단하게 힘들다고 슬럼프니 뭐니. 니가 저 사람들 만큼 힘든가.
뭔가에 미쳐본 적은 있는가.
저들 보다 오래 살았기에 감히 무료한가.
저들은 왜 기쁜가.
부럽지 않나.
이미 결정이 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조급해서 칭얼대는 건지.
Better late than never.
늦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