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疏通
'소통' 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시기는 아마도 분명히 18대 대통령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나랏님들이 우리들의 말을 하나도 안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언어구사력은 줄곧 논란이 되었지만 그것이 '소통' 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서로간의 교류에 대해 답답했었나보다. 어느 순간 유행한 웰빙이라는 단어처럼 내 주변은 소통이란 단어로 가득찼다. 웰빙은 누군가의 프로파간다였을텐데 소통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 소통합시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초면인데 우리가 뜻이 통할지 모르겠으니 나중에 다시 논합시다." 라고 할 수는 없다. 무작정 "그럽시다." 라며 쿨하게 말하기엔 추후에 그렇게 못했을 때의 내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까 싶어 그러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침묵이 답인가? 무언(無言)은 언뜻 중립적인듯 보이지만 실제론 상대가 좋을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나에게 있어선 항상 악수(惡手)로 작용할 것이다.
나에게 그런 호의를 보인 사람은 내가 그렇게까지 얼핏 '간단한' 제안에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아. 나에게 있어 선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예시가 이거구나. 아닌가, 너무 비관적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나에게 좋은 마음을 써줄 때 마다 고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변함이 없다.
한 발 나가서, 초면에 '소통합시다.' 라고 했을 때 '그럽시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소통'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게 가능했다면 난 어딘가의 SNS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절등한 정치인이 되었던지. '소통'의 한 편에는 어떤 형태든지 '호의'가 자리하고 있다. '호의'가 있어야, '소통'도 한다. 소통하고 싶을 때 마다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성격에, 주변 사람의 호의를 집중 받을 수 있다면 정치인을 하는게 제일 좋다. 적이라도 소통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글쎄. 그건 최소한 적이 당신의 말을 듣고 마주 앉아 있을만큼 당신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런 능력 있는 당신을 존경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자리에 있지 않다. 나는 호의를 벌어들일 자신도 없고 능력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통이 쉬운 일이었다면 나는 미투운동도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미투운동은 소통의 부재가 곪아터져서 생긴 운동이다. 남녀 간의 소통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소통 또한 부족해서 생겨난 운동이다. 그게 아니라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한 편의 성별이 이렇게 억압받은 모양새가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위드유운동이 가식적이라고도 생각한다. 네가 나서는 것에 응원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나 단절되어있었음에 대한 반성을 해야한다. 미투운동은 성별을 떠나서 수행되고 지지 받아야 좋은 운동이다.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니 다들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치 의무인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내가 아무에게나 호의를 가질 것이라는 자신이 없듯이, 당신이 나나 다른 이를 알고나서도 처음의 호의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처음에 가졌던 호의를 시간이 지나 잃어도, 그건 인간 관계에서 흔한 일이니까 괜찮다.
소통에는 '이해'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소통은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해는 상대의 말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성격이나 자라온 환경, 당신과 지내온 시간이 바탕이 될 것이다. 내가 '바보' 라는 댓글을 달았을 때 혹자는 'ㅋㅋㅋㅋ?'을 답글로 남길 수도 있고, 쌩판 모르는 사람이라면 'ㅡㅡ?' 을 남길 수도 있다. 이게 단순한 말의 의미를 떠나서 서로가 쌓아온 이해가 불러오는 차이를 보여준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해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요즘 유행하는 것 같다. 사람이 생각의 다름을 인정 못하고 살았다는 반증인데, 애초에 대화를 나눴을 때 '그럴 수 있다.', '그럴싸하다.' 라고 생각했으면 서로 바득바득 싸웠을 리가 없다. '오, 그래?' 하며 처음부터 대화가 잘 이루어졌을 것이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한다면서 생각을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결국엔 이해를 못하고 평행선을 걸어간다. 생각을 포기하니 화가 날 일도 없고, 서로 쌍욕을 안하게 된 것 뿐이지 않나 싶다.
소통하려고 너무 고생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모양에 당신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가진 당신만의 색깔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 채색을 빛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이제보니 '소통합시다.' 라는 말은 '우리 사겨요.' 라는 말과 비슷하다. 호의와 이해에 억지로 목매지 말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같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꺼내는 말은 그냥 절차일 뿐.
이번에도 어떤 분을 따라하려고 했는데... 다 쓰고 나니 그냥 저인 것 같네요. 망했어.
공격의 의지가 있어서 쓴 글이 아닙니다. 이걸 혹시 몰라 사과하고 있는 나도 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