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존재.
바로 학부모와 담임 선생님입니다.
아이를 올바르게 기르기 위해서 아이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두 교육의 주체가 협력해야함은 자명한 사실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연락하기 힘들까요? 두 주체 모두 ‘아이의 성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글 주제를 선택한 건 이 책 때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학교입니다.’ 권재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계신 부모님들께 정말 추천합니다.
때로는 날카롭고 비판적인 내용에, 때로는 깊은 통찰에 아~~! 하는 탄식으로 글을 읽으실 겁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제 나름의 생각을 덧붙인 형태로 진행됩니다. 책 저자와의 관점과 이 글의 내용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교육에 수요자는 없습니다’라는 챕터를 소개하며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교육 수요자라는 말은 마치 교사를 교육이라는 상품의 판매자처럼, 학부모는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학부모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교사는 돈 낸 사람 뜻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 대략 이런 식의 천박한 논리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 논리를 따라 ‘선택권 강화’라는 말이 학교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장에서 여러 생산자가 서로 경쟁하고 소비자가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듯, 교육도 여러 종류가 제공되면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으며 정말 동의했던 부분입니다.
교육에 수요자 공급자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교육이 한 아이를 온전하게 길러내는 과정을 의미할 때 교육대상은 아이가 될 것이고, 아이를 길러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교육환경이 되겠죠. 그리고 부모도 교사도 모두 그 교육환경을 보다 유익하게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하는 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이구요. 만약 교육에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고, 교육수요자가 교육대상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학부모가 아닌 아이여야 합니다. 학부모는 그 아이에게 가장 유의미한 교육을 제공하는 존재구요. 이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교육주체가 부모와 교사라는 점에 동의하실겁니다.
그렇다면 왜 담임 선생님과 부모가 서로 소통해야 할까요?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성장에 상호보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장점 | 아이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변화된 모습을 알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이를 사랑한다 | 많은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 단점 | 다른 아이들과 비교한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기 힘들다. 객관적으로 아이를 보기 힘들다 | 아이의 이전 모습을 알지 못한다. 한 아이에게만 애정을 쏟을 수 없다. |
표를 보면 아이의 성장에 부모와 교사가 서로 협력해야 할 부분들이 보이지요?
(저는 이래서 표를 사랑합니다.)
다시 안녕하십니까, 학교입니다.를 인용합니다.
돈을 냈다는 이유로 부모 스스로 교육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의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부모는 교육자가 아니라 교육기관에 가서 따지고 요구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함께 협력하여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책임지는 교육자가 아니라 학교에 이것저것 해 달라고 요구하고 안 되면 항의하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교사가 자신의 교육관에 맞춰서 아이를 가르칠 때, 그것이 학부모의 교육관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때는 분명히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니까요. 하지만 담임 선생님께서 그런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도 없고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학급의 모든 학부모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뿐더러 교사는 수요자-공급자의 관계에서 교육수요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기본적인 자질을 길러주고자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침해하는 것은 마치 의사에게 ‘이 환자는 아세트아미노펜과 보톡스를 적절히 섞어서 처방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의 처방이 의아하다면 충분히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의사도, 교사도 모두 그런점에서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잘 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한창 시끄러웠던 신분제 교실인 것 같습니다. 교사의 의도에 대한 설명과 학부모의 요구가 조금씩만 어우러졌어도 모두에게 상처가 덜 생겼을 것입니다.
교사가 학부모를 어려워하는 것은 대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신의 교육적 전문성 영역을 침해하고 교육 수요자의 관점에서 이것저것을 요구할 때.
학부모님께서 교사를 어려워하는 이유 역시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 교육을 공급하는 주체가 교사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혹시 말을 잘못했다가 우리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올거야. 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지만 참아야지 뭐.’ 그러다 불만이 극에 달하면 교감, 교장, 교육청에 차례로 민원을 넣게 되죠.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글의 제목이 뭐였죠?
담임 선생님과 소통하세요
낯설고 어렵더라도 담임선생님께 우리 아이의 모습을 알려주세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좀 더 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학부모님께 전달됩니다.
만약 학부모님께서 클래스팅, 밴드 등 소통의 도구를 사용하고 계신 담임 선생님과 함께시라면... 축하드립니다. ^^ 소통을 위해서 힘쓰고 계신 담임선생님을 만나셨네요. 그런 도구를 이용해 열심히 아이의 정보를 전달하고 담임선생님께 학교에서의 아이 소식을 전달 받으세요. 그리고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그렇게 노력해주시는 담임 선생님께 댓글로 격려해주신다면 더욱 열심히 아이들의 소식을 전하실 겁니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모두 우리 아이의 성장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 우리 아이 교육의 주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