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봉>은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다가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는 김종건의 회고록이다. 무려 71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수리봉>이라는 제목과 엄청난 두께를 보고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리>는 회고록의 주인공인 저자의 호이다. 영문학자로서 평생 제임스 조이스 연구에 힘써온 <수리>의 흔적이 이 책에 빼곡이 담겨 있다. 머리말을 보면 저자인 <수리>는 1934년 7월 6일 경남 창원의 진해 풍호동의 뒷산 봉우리 <수리봉> 아래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수리>는 그의 의인화된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는 평생 제임스 조이스를 연구한 영문학자로서 1967년 <율리시스>를 한국 최초로 번역하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수리>는 일생을 통해 난해 문학의 연구와 번역을 일관되게 작업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 학문을 향한 그의 뚝심, 끈기, 노력, 성실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어떤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리>와 같이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나의 삶은 어떤가. 지금까지 시도했다가 포기하거나 중단해 둔 일이 너무나도 많다. 무슨 일이든 쉽고 만만한 것은 없는데 약간의 어려움이라도 만나면 바로 다른 일을 찾았던 것이다. <수리>의 인생철학에 드러난 여러 가지 장점을 배우고 나 역시 내가 성공하고자 하는 분야에 확실한 신념을 갖고 우직하게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리>는 이 책에서 고향에 대한 이야기, 유년 시절, 청년 시절, 혼인, 도미 유학,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인 배경 답사, 귀국 후의 이야기, 여행 이야기, 정년 퇴임 이야기, 서울 국제 제임스 조이스 학회 개최, 뉴욕 재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물 흘러가듯 풀어놓는다. 한 영문학자의 일생을 <수리봉>을 통해 마치 영화처럼 감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영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영문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영문학자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하는 사람인가를 별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리봉>을 읽으며 영문학자가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고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수리>의 석사학위 취득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학자가 되기 위한 궁극적인 자격 조건은 박사학위이다. 그러나 박사학위 이전에 석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아카데미의 첫 발을 내딛는다는 의미와도 같다. 따라서 한 편으로는 학문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박사학위 취득보다는 석사학위 취득이 더 의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수리>의 석사학위를 위한 졸업논문의 과정은 순탄했다고 한다. 그의 석사학위 주제는 <율리시스>의 “부부 부정”이었다. <수리>에 의하면 조이스 소설의 주제는 부자 관계, 부부 부정, 물질주의 추구라고 한다. <수리>는 이들 중 제2항을 택한 셈이다. 이른바 모더니즘의 선언으로 알려진 <율리시스>는 그것의 ‘이즘(ism)’이 대변하듯, 세 가지 “신 비평”을 주종으로 삼는다고 한다. 따라서 <수리>는 문학 외에도 심리학에 몰두했기 때문에 약간의 위험한 모험성이 그의 논문 속에 내재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문학에 대한 심리학의 프로이트적 접근은 인간 환자에 대한 의사의 섣부른 처방처럼 위태위태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리>는 이를 자신이 남과 다른 자기 특유의 비평의 특수성 내지 독창성이라 간주한다. 그의 학문적인 열정은 남다른 편이어서 대학원 졸업 후에 대학 강사의 자격이 주어지고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거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미국의 털사 대학(Tulsa University)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가 오크라호마에 있는 털사 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조이스 연구가 강한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조이스 자료가 풍부한 대학 도서관과 저명한 학자 스탤리(Thomas F. Staley) 박사가 있었고 그는 그곳 대학원장에다 유명한 전위적 국제 잡지 <조이스 계간지>의 편집장이었다. 게다가 그는 패기와 재기가 넘치는 젊은 학자이기도 했다. <수리>의 유학 생활의 일상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LA에서 털사 대학을 지원할 때 자신이 지닌 지식의 미약한 축적을 두려워 한 나머지 스탤리 박사에게 MA 과정을 다시 밟겠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도미하기에 앞서 이미 한국에서 MA를 수료했지만 장차 보다 굳건한 토대를 위해서는 미국 본토의 또 다른 MA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그는 보다 충실한 박사 과정을 떳떳하게 착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만 6년의 세월을 더 공부해야 할 판이었지만 학위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이 보장되고 월 50달러의 생활비도 지급되었다고 하니 그래도 할 만한 공부였다고 본다.
한국은 대학원 학비가 평균 500만원에 달하고 이공계열이 아니면 장학금을 받기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박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도 매 학기 500만원 정도를 학교에 납부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리봉>을 읽어보니 미국의 대학원 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다른 듯 했다. 나 역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는 미국에서 경이롭도록 잘 짜여진 커리큘럼과 운영의 묘미를 느낀다. 수업은 철저하게 시간을 엄수했고 교수들의 강의 내용은 빈틈없이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한 주의 숙제의 준비를 위해, 다음 주의 연구 발표를 위해 <수리>는 항상 도서관으로 제일 먼저 달려갔다. 수업에 필요한 참고서를 제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것의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보조 자료 없이 강의에 임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는 <수리>의 마음이 늘 편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다는 심적 고통과 고뇌가 <수리>를 힘겹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수리는 제 기간 안에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가 된다. 나는 그의 열정과 노력에 감동하면서 나의 삶에도 이러한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해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나의 전부를 걸고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한 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나도 언젠가 <수리봉>과 같은 회고록을 남길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