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학교로 입학했던 마지막 세대였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막 지나갈 무렵 2학기 부터는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다 하더라. 그래서 공책에 프린트 되어있던 국민을 모두 초등으로 고쳐야만 했었다. 우리는 과거거 아주 까마득한 과거의 것이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기도 하다.
국민학교의 국민은 보통 다수의 의미를 지니면서,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은 없어진 애국조회와 반성조회가 있었다. 우리는 월요일 마다 국기 앞에 국가에 대해 충성을 맹세해야 했으며, 토요일마다 그러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또 교련이 있던 세대는 아니지만, 1년에 한번씩 극기훈련이라는 걸 갔었다. 우리는 사실 수학여행과 극기훈련을 구분해 생각하지 않았지만, 초등학생임에도 잠자리에 들때까지 얼차려를 받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이 70-80년대 이야기 같을 수 있지만, 9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민주화 이후 정부 시절이지만, 우리 삶의 모습은 과거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던 시절이다.(지금도 아니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겠지만.)
과거에 어른들이 했던 이야기들 중 들으면 터무니 없지만, 참 진지하게 하시는 이야기들이 있다.
- 국가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 국가는 부모이며, 국가가 없으면 우리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국가란, 영원 불멸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국가가 나의 부모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국가란 세계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흥망성쇄를 반복하고, 먹고, 먹히면서 나의 역사가 누군가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국가가 없어도 나는 존재한다. 나는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대한민국 이라는 국적을 부여 받았다. 국가가 나의 조국이 된 것은 운명이지만, 국가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는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한 국가의 존재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은 앞으로 반드시 사라질 것에 대한 충성이다. 내가 사는 이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관심, 애정이 있는 것은 옳지만, 과거처럼 충성을 강요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시절에는 그래야만 하는 배경이 있었으니 자체를 이해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옳은 일이다.
지금도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 본다. 세상은 마치 원형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나선형 모양의 원형이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까. 사회가 각자의 삶을 존중 하고, 개인의 생각을 표현 할 수 있는 사회로 느리지만 점차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